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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레 가볼 만한 낭만 여행지

봄빛·쪽빛 가득한 보물섬 드라이브 “休, 살맛 나네”

정리/김수정 기자 l 기사입력 2020-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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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범정부 차원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 캠페인이 전개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부의 방침을 따르느라 석 달 가까이 외출을 자제한 채 집안에 콕 박혀 지내고 있다.

 

울긋불긋 봄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꽃대궐을 이뤘지만 ‘봄꽃 명소’를 관리하는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에서는 “제발 올해는 꽃구경은 자제해 달라”고 호소한다. 실제로 꽃구경을 하러 남녘으로 떠났던 여행객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마음놓고 외출하지 못하는 스트레스와 코로나19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몸도 마음도 지쳐간다. 우울함으로 매사에 의욕이 없을 때, 번잡한 생각과 고민으로 마음이 복잡하고 혼란스러울 때는 위로와 재충전의 낭만 여행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4월에 조심스레 가볼 만한 낭만 여행지 2곳을 소개한다.

 


 

남해 다랑논에서 마늘 쑥쑥…어촌은 쪽빛 바다 품어 빛나고
임진성 오르니 푸릇푸릇 들판 정겹고, 구미동해변 한폭 그림


속리산 산세 기골장대…세조길은 험준한 산세 품은 유순한 길
귀 열고 세조길 따라 걷노라면 물소리가 번뇌 망상 씻어주는 듯

 

1. 보물섬 드라이브


‘한 점 신선의 섬(一點仙島)’으로 불리는 경남 남해는 봄에 더욱 아름답다. 다랑논에서 마늘이 쑥쑥 자라고 노란 유채 꽃이 흐드러지며, 작은 어촌은 쪽빛 바다를 품고 빛난다. 남해는 1973년 남해대교가 준공되어 하동과 연결되고, 2003년 창선·삼천포대교로 사천과 이어지면서 드라이브 명소로 주목받는다.

 

▲ 마늘과 유채꽃이 어우러진 도로. 

 

나비처럼 생긴 남해는 양 날개 위쪽으로 하동과 사천이 이어진다. 따라서 드라이브는 남해대교로 들어와 명소를 둘러보고 창선·삼천포대교를 통해 나가거나, 그 반대로 진행하는 게 좋다.


남해대교를 건너면 울창한 벚나무들이 손을 흔들어준다. 벚나무 아래 ‘한국의 아름다운 길’ 안내판이 반갑다. 이어지는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내려서면 이순신 장군의 사당인 충렬사가 지척이다. 충렬사 앞에서 바다 위에 걸린 남해대교의 수려한 자태가 한눈에 잡힌다.

 

길이 660미터에 높이 52미터로 웅장한 현수교지만, 굼떠 보이지 않고 날렵하다. 1973년 개통해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남해대교 아래 도도히 물결치는 바다가 노량해협이다. 조선 시대 유배객이 육지를 등지고 저 바다를 건너왔다. <화전별곡>에서 남해를 ‘일점선도’라 칭송한 자암 김구와 <구운몽>의 저자 서포 김만중도 나룻배에 몸을 실었다. 노량해협은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의 현장이기도 하다. 남해대교와 눈을 맞췄으면 본격적으로 차를 몰아 남쪽으로 내려간다.


먼저 만나는 곳은 남해 관음포 이충무공 유적이다. 노량해전을 승리로 이끌고 전사한 이순신 장군의 유해가 처음 육지에 오른 곳으로, 이락사(李落祠)라고도 불린다. 사당과 유허비를 둘러보고 소나무가 빽빽한 오솔길을 약 500미터 지나면 첨망대(瞻望臺)가 나온다. 이곳에서 노량해전의 전장이 한눈에 펼쳐진다. 가만히 바다를 바라보면 이순신 장군이 군사를 독려한 북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유적지 앞 이순신영상관에서는 노량해전을 입체 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다.

 

▲ 노량해협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첨망대. 


이충무공 유적에서 11km쯤 내려오면 남해읍으로 들어서고, 남해유배문학관을 만날 수 있다. 국내 최초이자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유배와 유배문학 전용 공간이다. 유배문학실로 들어가니 조선 시대 다섯 가지 형벌(태형·장형·도형·유형·사형)을 설명하는 코너가 있다. 유형(유배)은 사형 다음으로 무거운 형벌이다.

 

유배체험실에서 소달구지를 타고, 작은 방에서 유배객 체험을 해보니 시나브로 마음이 무거워진다. 유배지에서 절망적인 삶을 극복하고 예술혼을 불사른 김구와 김만중 등이 새삼스럽게 대단해 보인다.


다시 액셀러레이터를 밟고 서면사무소를 지나는데, 임진성 안내판이 보인다. 순간 호기심이 들어 핸들을 꺾었다. 임진성에 오르니 시야가 탁 트인다. 푸릇푸릇한 남해의 들판이 정겹고, 서쪽 구미동해변이 한 폭의 그림 같다. 둘레가 280미터쯤 되는 성벽을 한 바퀴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 일대는 개미 허리처럼 잘록하게 들어간 지형이라, 성을 쌓고 지키면 천혜의 요새가 된다. 임진왜란이 격렬하던 1592년 군관민이 힘을 모아 성을 쌓고 왜적을 물리쳤다고 한다.


임진성에서 내려와 남쪽으로 방향을 튼다. 평산항 이정표 앞에서 ‘남해바래길 작은미술관’ 안내판이 눈에 띈다. 평산항으로 내려서니 정말 손바닥만 한 미술관이 있다. 예전 보건소 건물을 미술관으로 고쳤다. 몸을 고치던 곳이 마음을 치유하는 공간으로 바뀐 셈이다. 안으로 들어서자 진한 꽃향기가 풍긴다. 서양화가 박순자 화백의 ‘수선화’ ‘살구꽃’ 연작에서 풍기는 향기다. 밖에도 봄이 절정이고, 미술관 안에도 봄이 농익었다.

 

▲ 전망대에서 바라본 가천다랭이마을 전경. 


가천다랭이마을이 가까워지면 마을 입구 전망대에 차를 세우자. 이곳에 오르면 산과 마을, 바다가 한눈에 펼쳐져 탄성이 절로 나온다. 설흘산과 응봉산의 급경사 산비탈이 바다로 내려오는 지점에 곡선형 계단식 논이 100층 넘게 만들어졌다. 크기와 생김새가 제각각인 논에는 마늘이 쑥쑥 자라고, 유채 꽃이 넘실거린다.


마을로 들어서면 남해가천암수바위가 반긴다. 마을에서는 미륵불이라 하여 각각 암미륵·숫미륵으로 부르기도 한다. 아이를 갖지 못한 여인들이 아무도 모르게 숫미륵 밑에서 기도를 드리면 득남한다고 알려져, 다른 지방에서도 많이 다녀갔다고 한다. 오른쪽 암미륵은 여인이 잉태하여 만삭이 된 모습으로 비스듬히 누웠다. 암수바위는 조각 형태가 투박해 정감 있고 마을 뒤의 설흘산·응봉산과 어울려 더욱 신비스럽다.


암수바위에서 내려가면 허브 꽃밭과 정자를 만난다. 주변에는 유채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정자 앞으로 이어진 길이 남해바래길 2코스 앵강다숲길 시작점이다. 꽃길 따라 휘파람 불며 여유롭게 걸어도 좋겠다.


가천다랭이마을에서 나와 도착한 신전삼거리 일대가 나비의 몸체에 해당한다. 여기서 오른쪽 날개를 넘어가면 두모마을 지나 상주은모래비치에 닿는다. 해변의 울창한 소나무 방풍림은 시원한 바닷바람을 쐬면서 쉬기 좋다.


다시 시동을 걸고 출발해 미조항을 지나면 물미해안도로가 펼쳐진다. 남해의 가장 동쪽 해안으로 따르는 길이다. 코너를 돌 때마다 바다가 차 안으로 파고든다. 핸들을 놓치면 그대로 쪽빛 바다에 풍덩 빠질 것 같다. 오른쪽으로 계속 따라오던 마안도가 시야에서 사라지면 물건리 방조어부림에 닿는다.

 

▲ 남해 물건리 방조어부림은 고기를 부르는 숲이다. 


남해 물건리 방조어부림은 바닷가의 울창한 숲이다. 팽나무, 말채나무,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이팝나무 등 활엽수와 상록수인 후박나무가 가득하다. 바닷바람과 해일 등을 막아 농작물과 마을을 보호하고, 물고기 떼를 유인하는 어부림 역할도 한다.


마을 뒤편 언덕으로 차를 몰면 1960년대에 산업 역군으로 독일에 파견된 동포들이 귀국해서 정착한 독일마을, 아기자기한 정원이 예쁜 원예예술촌을 지나 창선교에 닿는다.


창선교가 놓인 지족해협에는 죽방렴의 대나무 발 그물이 널렸다. 죽방렴은 남해안의 좁은 수로에서 멸치를 잡는 데 쓰이는 어법이다. 죽방렴으로 잡은 멸치는 죽방멸치라고 해서 최상품으로 대우받는다. 신선도가 높고 비늘이 다치지 않아 맛이 좋기 때문이다. 창선교 아래 지족항에는 길이 100미터, 폭 2미터 도보교와 관람대가 있어 죽방렴의 구조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남해 여행은 멸치가 유명한 지족리의 식당에서 마무리하는 것이 제격이다. 상추에 멸치회무침을 올린다. 목구멍으로 푸른 남해가 통째로 들어온다.

 

<글·사진/진우석(여행작가)>

 

2. 충북 보은 세조길


속리산은 고운 최치원의 ‘산은 사람을 떠나지 않는데 사람이 산을 떠나는구나(山非離俗 俗離山)’라는 시가 전해오는 명산이다. 백두대간이 지나는 속리산은 우리 땅의 큰 산줄기 13개 가운데 한남금북정맥이 가지를 뻗어 내리고, 한강과 금강, 낙동강 물길이 나뉘는 분수령이다.


산세는 한마디로 기골이 장대하다. 최고봉 천왕봉, 문장대, 입석대 등 장대한 바위가 솟구쳤다. 험준한 산세가 품은 유순한 길이 ‘세조길’이다. 조선 7대 임금 세조가 요양차 복천암으로 온 역사적 사실에 착안하여 붙인 이름이다. 현재 법주사 매표소부터 세심정 갈림길까지 이어진다. 세조길 탐방은 속리산 오리숲길과 세조길을 함께 걷고, 이어 복천암과 비로산장을 둘러보는 게 좋다.

 

▲ 험준한 속리산에서 완만한 숲길이 이어지는 세조길. 


서늘한 공기에 잠이 깼다. 청아한 새소리와 진한 나무 향이 텐트 속으로 밀려온다. 아침부터 아이들이 까르르 웃는 소리가 듣기 좋다. 간밤에 속리산사내리캠핑장에서 묵었다. 속리산 오리숲길 옆에 자리한 캠핑장으로, 사이트가 널찍하고 숲이 좋아 가족 캠퍼들이 많이 찾는다. 캠핑장의 아침은 여유 있고 평화롭다. 그 분위기에 젖어 느긋하게 아침을 지어 먹고 길을 나선다.


캠핑장에서 나와 속리산 오리숲길을 걷는다. 속리산버스터미널부터 법주사까지 가는 이 길은 10리(4km)가 안 되고 5리(2km)만 이어진다고 해서 오리숲길이다. 먼저 밑동 굵은 소나무가 터널을 이룬 길이 나온다. 자유롭게 가지를 뻗어 곡선을 그리는 소나무가 성스럽게 느껴진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되도록 천천히 걷는다.


법주사 매표소를 지나면 ‘세조길 자연관찰로’ 안내판이 반긴다. 여기부터 세조길이다. 침엽수와 활엽수가 어우러진 속리산 오리숲길에 가을의 붓질이 시작됐다. 초록 잎사귀 일부는 울긋불긋 단풍이 들었다. 초록과 단풍이 어우러진 풍경에 설렌다.


속리산 오리숲길 종착점에 법주사가 있다. 관음봉, 문장대, 천왕봉 등 속리산 주봉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속리산 최고의 명당이다. 법주사는 553년(진흥왕 14)에 의신이 창건했고, 776년(혜공왕 12)에 진표와 그의 제자들에 의해 미륵 신앙의 중심 도량으로 바뀌었다. ‘호서 지방 제일 가람’이란 별칭처럼 법주사 경내와 암자에는 국보 3점, 보물 12점, 시도유형문화재 22점 등 문화재가 많다.


경내로 들어서 금강문과 천왕문을 지나면 보은 법주사 팔상전(국보 55호)을 만난다. 5층 건물인 팔상전은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은 목탑이다. 팔상전이라는 이름은 팔상도를 모신 건물이라는 뜻이다. 팔상도는 부처님의 일생을 여덟 장면으로 표현한 그림이다.

 

부처가 도솔천에서 내려오는 모습, 룸비니에서 탄생하는 모습, 세상을 관찰하는 모습, 성을 넘어 출가하는 모습, 설산에서 수도하는 모습, 보리수 아래서 마귀의 항복을 받는 모습, 녹야원에서 첫 설법을 하는 모습, 열반에 드는 모습이다. 그중 열반에 드는 모습이 무척 편안해 보여 한참을 쳐다본다.


이어 팔상전 뒤의 쌍사자 석등(국보 5호)을 감상하고, 법주사의 중심 법당인 2층 대웅보전(보물 915호)에서 부처님께 인사를 올린다. 법주사 경내에는 원통보전, 석연지, 철당간, 무쇠 솥, 마애여래의좌상 등 유물이 많으니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둘러보자.

 

▲ 투박한 표현이 매력적인 보은 법주사 마애여래의좌상. 


법주사에서 나와 다시 세조길을 걷는다. 세조길과 나란한 도로는 예부터 있던 길이다. 주말이면 등산객과 부속 암자를 찾는 차량이 뒤엉켜서 혼잡했는데, 속리산국립공원이 세조길을 연 덕분에 호젓한 숲길을 따라 걸을 수 있다. 길은 계곡을 막으며 생긴 널찍한 저수지 옆을 따른다. 저수지 안에 가을 하늘이 잠겼고, 물고기가 살랑거린다.

 

휴게소를 지나면 계곡을 따라 데크가 이어진다. 수량이 적어도 물소리가 제법 크다. 계곡으로 크고 작은 바위가 있는 까닭이다. 귀를 열고 한 걸음 한 걸음 걷다 보면 물소리가 번뇌와 망상을 씻어주는 느낌이다.

 

▲ 계곡 옆으로 데크가 설치된 세조길. 


이윽고 도착한 목욕소. 세조가 이곳에서 목욕하다가 월광태자를 만나 피부병이 깨끗하게 나았다는 이야기가 내려온다. 목욕소를 지나 세심정 입구에서 세조길이 끝난다.


이윽고 세심정휴게소를 거쳐 이뭣고다리를 건너면 복천암으로 들어선다. 복천암은 세조가 마음의 병을 고친 곳으로 알려졌다. 사흘 동안 기도하고 신미대사의 설법을 들은 뒤 복천(福泉)을 마시고 병이 나았다고 한다. 복천을 마셔본다. 달고 진한 맛이 일품이다. 왠지 복 받을 것 같아 벌컥벌컥 들이켠다.


이후에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내처 문장대에 오른다. 좀 더 산책을 즐기고 싶다면, 복천암 입구 오른쪽으로 난 데크를 따라 올라가자. 이정표도 없는 이 길이 복천암의 숨은 보물이다. 설렁설렁 이어진 오솔길을 10분쯤 오르면 고갯마루에 이르는데, 여기에 신미대사와 그의 제자 수암화상의 승탑이 있다. 승탑 뒤 소나무 사이로 속리산의 우람한 바위 능선이 보인다.


승탑에서 내려오면 속리산의 숨은 명소 비로산장이 나온다. 계곡을 낀 산장은 주변으로 큰 바위와 나무가 어우러져 분위기가 그만이다. 고 김태환 씨가 지은 개인 산장으로, 52년 역사를 자랑한다. 지금은 대를 이어 가족이 운영한다. 산장 마당에 들어서면 녹차를 건네며 쉼터를 제공한다. 따뜻한 차를 마시며 산장을 바라보는 맛이 그윽하다. 계곡 물소리 벗 삼아 하룻밤 묵어가고 싶은 마음이 절로 난다.


속리산을 떠나 들러볼 만한 곳은 성족리에 자리한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이다. 보은은 동학농민군이 최후를 맞은 곳이다. 1894년 12월 공원 근처 북실마을 일대에서 전투가 벌어졌는데, 이때 동학군 약 2500명이 사살되면서 동학농민운동은 막을 내린다. 통곡의계단을 올라 동학농민혁명군위령탑에 묵념을 올리는 것으로 보은 여행을 마무리한다.

 

<글·사진/진우석(여행작가)>
<콘텐츠 출처=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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