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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권 세태풍자 소설 ‘불 꺼진 무인등대’ 제2부 <9> 마왕과 코미디언

1980년 봄, TV 속 전두환 보는 순간 돌변했다

글/김영권(소설가) l 기사입력 2020-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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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년엔 날렸던’ 사진작가, 시대불운으로 날개 꺾였다고 한탄
그는 전두환 꼴상에 대한 구역질 견디지 못해 데모 현장 참여


이후 기지촌 들어가 비참한 미군 위안부들의 삶 카메라에 담아
카메라는 없고…슬픈 창녀의 초상 마음속 필름에 담을 수밖에…

 

그때 누군가 그의 어깨를 툭 쳤다.
“어이, 형…달빛 아래 독작도 좋지만, 이런 시장통 목로에서 한잔 드는 것이 현실에선 더 낭만적이지. 흐흐….”


Q는 슬쩍 돌아보았다. 추레한 남자가 얼굴에 온통 주름을 지으며 웃고 있었다. 눈동자엔 벌건 핏발이 섰는데 검푸른 입술이 벌어져 앞니 빠진 틈으로 붉은 혀가 들락날락거렸다.


“아니, 여긴 어쩐 일이세요?”


“방랑자가 어딘들 못 가리오.”


“어쨌든 여기 좀 앉으시죠.”


“이런 데서 만나니 훨씬 반갑군 그려.”


막걸리를 한 잔 따라 주자 자칭 방랑자는 벌컥벌컥 들이켜곤 낙지볶음을 집어 질겅질겅 씹었다.


“여기 자주 오세요?”


“간혹 발길 닿는 대로. 흐흐흐….”

 

▲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습니다.” 1987년 1월, 경찰조사를 받던 스물두 살 대학생이 사망한다. 한 사람이 죽고, 모든 것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사진은 뜨거웠던 1987년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1987’ 한 장면. 

 

‘눈만 봐도 저건 악마다!’


늙수그레한 그 사내는 일견 노숙자나 거렁뱅이처럼 보였지만 ‘왕년엔 쫌 날렸던’ 사진작가였다. 자신은 원래 아름답고 신비스런 예술사진을 찍고 싶었으나, 시대적 불운에 의해 날개가 꺾여 버렸다고 한탄하곤 했다.


대학 신입생이던 1980년 봄, 그는 정치적이지도 않았고 잔인한 살륙이 벌어진 땅 광주 출신도 아니었으며 무엇보다 데모대에 끼고 싶지 않았는데…티브이 화면에 나온 보안사령관 전두환의 얼굴을 보는 순간 마음이 저절로 돌변했다고 한다.


‘저건 악마다! 저 냉혹스런 마두의 눈과 목소리만 들어봐도 광주에서 수천 명의 시민이 학살당했다는 소문은 유언비어가 아니라 사실일 것이다!’


그는 사진 동아리에 들어갔는데, 사진 기법과 방법론은 개인의 주관적 취향을 벗어 던져 버리고 오로지 질곡에 빠진 민족·민중을 구하기 위해 악마 정권을 타도하는 데 실천적으로 복무해야 한다는 분위기였다. 그런 주장이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개성미나 델리킷한 예술성 따위는 무시를 넘어 조롱당하기 일쑤였다.


사진 고유의 기법을 탐구하기보다 데모하러 나가는 날이 점점 더 많아졌다. 그는 살벌한 사회 현실도 현실이려니와 마두 전두환의 꼴상에 대해 구역질을 견디지 못해 데모 현장에 참여했다(징그러운 음식이나 현실도 여럿이 함께 하면 좀 견딜 수 있듯…).


마침 그 무렵 등장한 징그럽게 못생긴 코미디언 이주일은 전마두의 악마성을 어느 정도 중화시킴과 동시에 은근슬쩍 희화화시켰기에 대중들의 인기를 얻었던 게 아닐까 싶었다. 물론 전마두 정권 또한 온 나라에 창궐한 역겨운 피비린내를 희석시키려는 목적으로 이주일을 이용했을 수도 있다. 그즈음 대머리 마두를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정치 드라마는 물론 역사극에서도 갑작스레 도중하차당해 사라진 배우들의 경우를 살펴보면 마두 정권의 속내를 짐작할 만하다.


전두환은 자신의 얼굴에 대해 모종의 콤플렉스를 지니고 있었을까, 혹은 자신감이 너무나 강해 짝퉁에 거부반응을 일으켰을까? 청와대 대통령 궁에서 이런 장면이 벌어졌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봐, 저 괴상망측하게 생긴 놈은 뭐야, 응? 짝퉁 따윈 싸그리 말살시켜 버리라고 했잖아!”


“네, 각하! 지시하신 대로 처리했습니다. 그런데…저 이주일이란 코미디언은 원래 성이 정씨입니다.”


“그게 뭔 상관이야?”


“희극, 즉 웃음을 위해서는 제 부모 조상도 팔아먹을 수 있는 놈이란 말씀입죠.”


“그래서? 간단명료하게 말해 봐!”


“넵, 현재 국민들은 우리 전두환 각하 혁명정부의 정통성에 대해 모종의 의구심과 사악한 거부감을 갖고 있습니다. 바로 이럴 때 저런 만년 무명의 코미디언을 갑자기 성공시켜 스타로 만든다면, 국민들도 절망에서 눈을 돌려 새 시대의 희망을 꿈꿀 수 있을 겁니다!”


“흠, 그래도 그렇지…저런 흉측스런 놈한테서 무슨 희망을 본다는 게야, 응? 정말 목불인견이로군. 흠, 못생겨서 죄송하다니…죄송할 정도가 아니라 석고대죄해도 모자라겠구먼. 도대체 저놈은 뼈대가 있는 거야, 녹아 버린 거야, 응? 말투로 몸짓도 늙어빠진 문어 새끼처럼 이리 흐느적 저리 흐느적…꼴보기 싫으니 당장 퇴출시켜 버려!”


“네, 각하…하지만 주어진 기회를 창발적으로 잘 이용하여 태평천하를 이루는 것도 성군의 덕목이옵니다…물론 처음엔 이질감을 좀 느끼겠지만, 웃음은 만고의 명약입니다. 때론 위험을 감수할 필요도 있습니다. 저 불세출의 코미디언이 뼈 없이 흐물흐물 능글맞으면서도 기묘한 웃음을 자아내는 동안, 국민들은 어느 새 동화돼 일체감을 느끼면서…각하의 이미지에서도 공포스런 독소를 중화시켜 버리고 친밀감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흠, 그래…흐흐…저런 추남 어릿광대에게도 나름의 역할은 있는 모양이로군….”


하지만 갓 스무 살이던 그는 마두의 위선적인 미소에 질려 눈살을 잔뜩 찌푸린 채 코미디언의 연기를 향해서도 침을 뱉곤 했다. 만일 전마두가 없었다면 이주일의 성공이 가능했을지 공상하면서….

 

▲ 1980년 5·18 광주민주화 운동 당시 무방비 상태의 시민에게 곤봉을 휘두르며 폭력을 가하는 계엄군의 모습. 

 

암울한 시대 사진으로 기록


그 무렵 ‘온전 전(全)’자가 이상하게 변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원래는 入자 아래 王자가 들어가야 하는데 入자 대신 人자를 사용하라는 지엄한 명령이 구중궁궐에서 내려 전국의 신문이 ‘金’이란 새로운 활자를 만들어 쓴다는 것이었다. 그건 즉 人王(사람들의 왕)이란 뜻이었다.


정말 청와대에서 내려온 지시인지 확인하긴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어느 보수적인 신문지면에 선명히 찍힌 그 괴상스런 인조 글자를 본 적은 있었다. 그 일 때문에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던 손님(金아무개)과 종업원(全아무개) 사이에 언쟁이 생겨 살인사건이 벌어질 뻔한 광경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


가치관이 전도된 시대에 손님의 말이 옳은지 종업원의 얘기가 타당한지 선뜻 판결을 내리기도 어려운 노릇이었다. 만일 변조 명령이 유언비어가 아닌 사실이라면…마두 또한 코미디언처럼, 아니 한층 더 방약 무례하게 조상 부모의 성씨를 바꾼 대역죄인인 셈이었다.


아무튼 그런 구토 직전 상황에서 청춘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그는 동아리를 벗어나 홀로 전국 각지를 떠돌았다. 길바닥의 먼지 앉은 민들레를 찍기도 하고 빈민촌을 멍하니 바라보기도 하고 기지촌으로 들어가 비참한 미군 위안부들의 삶을 카메라가 아니라 마음속의 필름에 담기도 했다.


한잔 술에 취해 천재의 몽상을 펼쳐 보기도 했으나 잠이 깨면 현실은 더욱 씁쓸할 따름이었다. 마두의 얼굴은 밤마다 꿈에 나타나 이 세상에 필요없는 놈이라고 검붉은 입술로 비웃었다. 그는 토악질도 못한 채 숨이 막혀 깨어나 어둠 속에서 생각했다. 좀 비굴스런 기분으로….


‘혹시 조금 더 일찍 태어나 1980년이 아니라 1970년대 후반에 대학에 입학했더라면 조금이나마 낭만을 느껴 볼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그 시대를 직접 체험한 교수님이나 선배들은 작두날 같은 독재정치에 치를 떨지만…그래도 어딘지 좀 여유로운 일면이 내비치곤 했어. 단 10초 동안만이라도 그런 여유 또는 낭만을 느껴볼 수 있었다면 영혼도 인생도 조금은…


하지만 이건 몽상일 뿐이야. 몽상이란 책임감도 의무감도 없이 안락만 취하려는 습성이니까. 열아홉과 스무 살은 한 살 차이지만 사회적 책임은 훨씬 무겁지…어떤 칼럼을 보니 1970년대보다 1980년대가 오히려 투쟁하기 쉬웠다는 얘기가 있더군. 하긴 뭐 자기가 처한 상황과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테니…어쨌건 1970년대엔 이른바 지식인들이 나서서 지하의 어둠을 틈타 혁명을 모색했다면, 1980년대엔 주권을 자각한 민중들이 직접 거리 광장으로 나서서 민주·자유·민족·평화를 외쳤다는 거야. 그건 뜨거운 피를 대가로 찾은 귀중한 결실이지.


하지만…그 어떤 보석 같은 열매일지언정 광주의 피바다는 없었어야 했어. 차라리 박통의 유령이 나타나 십 년쯤 더 독재를 하더라도 말야…아니, 전마두가 불법적으로 대통령 자리를 꿰차더라도…하지만 이미 마두 패거리는 왕위 찬탈 작전을 시작했고 그 짓을 두고 볼 수 없다는 국민을 대표하여 광주 시민들이 나선 것이니 원인 제공의 살인마귀는 전마두 패거리들이지.


안타깝고 아쉽고 분통이 터지긴 해도 고장난명(孤掌難鳴)이란 속담도 있듯…서울의 봄 앞에 선 사람들, 특히 두 야당 지도자 김대중·김영삼이 사리사욕 없이 과연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위해 행동하는 양심으로 대도무문의 길을 걸었는지 어쨌는지는 엄밀히 따져 봐야 해. 저번에 박정희와 전두환의 존재성은 김영삼과 김대중이 있기에 가능했다고 어느 교수님이 역설적으로 강의했다가 학생들에게 몰매를 맞은 적도 있었지만…정말 전라도도 경상도도 아닌 우리 같은 사람들은 때론 짜증이 나기도 한다니깐….’


그는 가방 속에 늘 작은 카메라를 챙겨 넣어 다녔으나 사진을 찍진 못했다. 간혹 천재인 척 폼을 잡아 보아도 영감은 내리지 않았다. 실상 재주도 능력도 노력도 부족하면서 전마두를 탓하며 어리광 부리는 아이처럼 몽상 속에나 빠져 살진 않았던가? 그런 측면은 분명히 스스로도 감지할 수 있었다.

 

실컷 죽 쑤어 개한테 준 꼴


‘아, 만일 그 마두만 아니었더라면…조금만, 정녕 아주 조금만 더 인간의 얼굴을 지닌 야만이었다면…일신의 안락과 예술성 따윈 싸그리 내던져 버리고 진실을 위해 투쟁할 수 있으련만…하지만 마두 패거리는 이미 인간의 수준을 넘어 버렸어. 정의사회 구현이니 뭐니 입바른 소릴 해대고 있지만, 그리고 이 사회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제왕적 대통령 권좌에 올라앉아 있지만…실상은 제 놈들 패거리의 사악스런 이익과 욕망을 국정(國政)이란 이름으로 사취하고 있을 뿐이야…무엇보다 사이비 인간 같은 전마두로 인해 조성된 이런 분위기가 싫어.


정녕…진실도 좋고 투쟁도 필요하지만…핏빛 같은 붉은 깃발 아래 모여 마치 열정과 이성을 장착한 지고지선의 혁명 사도(使徒) 로봇처럼 목소리만 크고 실속은 별로인 획일적인 운동은 싫어. 물론 그런 걸 좋아한 사람은 별로 없었겠지. 하지만 성격과 취향에 따라서는 그 위기를 기회로 활용한 사람도 많았을 거야. 마치 고딩 때 체육 시간에 운동을 좋아하는 녀석들처럼 환호작약까진 하지 않았겠지만…


그래도 진짜로 불의를 참지 못하는 기질을 지닌 사람과 달리 개중엔 대학생이란 좆도 아닌 자의식 또는 선민의식을 갖고 데모대에 참여한 자들, 그 속셈은 뒤풀이 때의 술과 장기 자랑과 여자(또는 남자)…즉, 로맨스에 눈독 들인 애들도 아마 있었을 테지…아, 이런 쓰잘데기없는 얘길 중얼대는 난 무슨 잘난 짓을 했길래….’


1987년 6월10일 최루탄 연기가 난무하는 날, 광화문과 종로에서 항쟁 대열 속을 이리저리 비껴 다니며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던 그는 뒤통수에 격렬한 타격을 받곤 푹 쓰러졌다. 민주 항쟁 데모대와 진압 경찰대의 발길이 사지를 밟으며 달려 지나갔다…그리고 작열하는 염천을 넘어 1990년대가 시작되었다. 그는 자신의 성격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매사에 앞장서 나가진 못하나마 느릿느릿 쓰레기 더미를 파헤쳐 버려진 진실을 찾아 보자!….


그런데 문민 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자유의 주스 잔을 든 사람들, 특히 그동안 잠자코 강 건너 불구경이나 하고 있었거나 독재 정권에 아부하던 능구렁이들까지도, 이제 투쟁의 시대는 갔으니 소홀했던 내면 탐구와 개성의 예술적 발현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운동권의 표현 매체이던 팸플릿형 잡지들은 하나 둘 자취를 감추고 수구 보수적인 대형 잡지들이 감춰 두었던 날개를 활짝 폈다.


(그 중엔 전마두의 아들이 경영하는 대형 출판사에서 간행한 잡지도 있었는데, 자금이 넘쳐나서 그랬는지 어쨌는지 최고급을 지향하는 초호화판 꾸밈새였다. 고료가 다른 잡지의 서너 갑절이라 내로라 하는 유명작가들의 작품이 실렸고 신인 콘테스트의 당선 상금도 어마어마해 수많은 응모작이 몰려들었다. 그렇긴 해도 뒷구멍에선 그 똥은 필시 전직 대통령 아비가 긁어모은 검은 돈이리란 소문이 슬슬 새어나왔다).


사진계뿐 아니라 다른 문화예술계도 마찬가지였는데 무척 철면피스런 모습이었다.


어쨌든 자칭 진보적 실천운동파는 실컷 죽 쑤어 개한테 준 꼴이 되고 말았다. 운동도 하면서 일반 대중에게 감동을 줄 만한 좋은 작품을 많이 생산했더라면 아마 그 뜻은 강물처럼 흘러 어느덧 바다로 모여들어 영원히 맥동쳤으련만….


일말의 아쉬움 속에서나마 그는 나름대로 허상을 넘어 진실한 사진을 찍어 보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일단 데뷔를 하여 지망생 꼬리를 떼어야 했으므로 시대적 흐름의 눈치를 전혀 안 볼 순 없었다. 천재가 아닌 다음에야. 그는 자신이 천재가 아님을 서서히 깨닫기 시작했다….


그런데 곧 이어 포스트 모더니즘의 허연 거품 파도가 몰아쳐 와 그의 카메라 렌즈를 막아 버렸다. 아, 왜 이다지 허망하고 불운한가! 아무리 예술이 새롭고 신기스러우면 장땡이라지만, 저 따위로 뻔뻔스레 먼 외국 작가의 작품들을 카피해 이리저리 제멋대로 찢어 이기적으로 얼기설기 조립한 것을 한국 예술의 새로운 차원을 개척한 걸작이라 칭송하다니! 차라리 사진을 버리는 게 속시원하겠군….

 

588 사창가로 간 사진가


석양 무렵, 그는 카메라를 팔아 버리곤 청량리 쪽으로 어슬렁 어슬렁 걸음을 옮겼다. 역전 가게에서 소주와 쥐치포 따위를 산 다음 588 사창가로 들어섰다. 오래도록 재개발 구역으로 묶여 있다가 결국 한 채 한 채 무너져 내리고 이젠 서너 채만 묘지처럼 남아 흐린 홍등을 밝힌 상태였다. 귀신인 양 잡아채려는 창녀들을 겨우 뿌리치며 묻고 물어 그는 순희를 찾아갔다.


그녀는 방구석에 엎드려 콜록콜록 기침을 하면서 바로 입 앞에 흘려 놓은 자신의 피를 바라보고 있었다. 인기척을 채고 몽롱한 눈길로 방문객을 슬쩍 흘겨본 그녀는 힘겹게 일어나 앉아 휴지로 피를 닦았다.


그냥 놔둬! 그건 예술이 될 수 있어!


그는 속으로 자신을 조롱하며 소리쳤다. 말이 되지 못한 기괴스런 발성이었다.


여자는 무시하듯 굳이 더 힘주어 핏자국을 문질렀다. 비웃음 같은 신음을 내며….


오늘은 안 돼…그리고 다음에도 안 돼….


여자는 불그죽죽한 휴지를 들곤 손사래쳤다.


아냐, 오늘은 공짜가 아니야.


그는 주머니에서 돈뭉치를 꺼내 놓았다. 창녀는 자신의 피를 내려다보며 서글피 낄낄 웃어댔다.


그가 검은 비닐 봉지 속에서 소주병을 꺼내 놓자 그녀는 한숨을 쉬면서도 힘겹게 일어나 앉았다. 여자가 피 묻은 손으로 투명한 술잔을 들어 기울이는 정경을 가만히 쳐다보던 그는 정욕보다 더 강렬한 충동을 느끼며 자신의 분신을 찾았다. 하지만 카메라는 이미 곁에 없었다. 그는 슬픈 창녀의 초상을 마음속 필름에 담을 수밖에 없었다….


<다음 호에는 ’벌레‘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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