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김영권 세태풍자 소설 ‘불 꺼진 무인등대’ 제2부 <5> 성령

하느님이 무당들 내려다보면 어떤 기분 들까?

글/김영권(소설가) l 기사입력 2020-03-27

본문듣기

가 -가 +

무당이 과연 신령의 뜻을 받아 알려줄 만한 존재인가?
내림굿은 온갖 종교 중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입교의식

 

평범한 사람들도 道의 비행접시 타고 신의 나라 들락?
한국에선 정치꾼이 일 주도하면 항상 최악의 결과 초래

 

길을 걸으며 Q는 생각에 잠겼다.


‘만일 신의 입장에서 무당을 바라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옛적부터 동서고금의 무당은 지역마다 명칭은 다를지언정 모두 천신의 뜻을 지상의 인간들에게 전하는 존재였다니까 말야.


한반도의 무당이 유별스레 특이한 무속문화를 펼쳐 왔다곤 해도, 실상 그 어느 나라의 샤먼들인들 한국만큼 독특하지 않을까? 한국 사람들이 유달리 신이 많다느니, 신난다는 그 표현이 증좌라느니, 한번 신이 나면 한강의 기적을 열 번이라도 이뤄낼 수 있다느니 하는 주장도 개방귀 같은 헛소리일 뿐이다.


어느 나라 사람인들 신이 없을까. 다만 신이 나더라도 흥청망청 지랄하지 않고 이지(理智)로써 제어하여 훨씬 더 고급스럽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천천히 튼실하게 나아가는 게 아니겠는가. 남들이 비웃는지도 모른 채 제 신에 겨워 어릿광대 짓을 하고 있는 게 한국인의 진짜 초상(肖像)이 아닌지 궁금해.

 

신의 관점으로 본다면…참으로 철딱서니없고, 선악을 구분하지 못한 채 악마에게 속아 바벨탑을 지어 올리는 망나니들로 생각될지도 몰라. 흠, 일반인들은 그렇다 치고….’


그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한숨을 쉬었다.

 

▲ 스물여덟 살 인희에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신내림의 운명과 그녀를 바라보며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의 소임을 느끼는 무당 이해경의 삶이 안타깝게 드러난다. 사진은 무당 이해경의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사이에서’ 한 장면. 

 

무당이 신을 받으려면?


‘요즘의 무당들을 하느님께서 내려다보신다면 과연 어떤 기분이 들까?…흠, 모든 분야에서 일류급은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해내고, 이류급은 생뚱스런 그걸 보편화시키고, 삼류는 타락시킨다고 하더라만…우리 인간이 봐도 우스꽝스런 꼴은 이미 충분히 목불인견이니 접어두고 한번 슬쩍 상상해 보자구…즉, 무당이란 존재가 과연 천신 또는 신령의 뜻을 받아 알려줄 만한 존재인지 근원적으로 생각해 보는 거지….


일단, 신을 받아 내리려면 청정심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 그녀 얘기처럼 자기를 죽여 무심 무아 상태가 되어야겠지. 아집·아견이 독뱀처럼 또아리 튼 곳에 어찌 신령이 강림하겠어.

 

물론 예외적인 그런 경우가 없진 않겠지. 우선 천진난만한 아이…하지만 요즘엔 다섯 살만 돼도 웬만한 어른 못잖게 영악하니 불가능…오히려 소·늑대·돼지·딱정벌레·잠자리·지렁이 같은 미물 짐승에게 부지불식간에 신이 내리고 있을 거야. 하늘 날아다니는 새는 물론이고…그다음엔 현실에 살면서도 이치를 궁구하여 진리와 일심동체가 되려는 사람이 있겠지만 거의 몽환적인 얘기고 보면…일단 무당이 최일선에 서 있다고 해야겠지.’


그는 고개를 흔들기도 하고 끄덕거리기도 했다.


‘그네들이 겪는 신병 또는 무병은…혹독하고 끈질긴 고통을 통해 삶에 대해 회의케 하여 완전한 죽음을 그리워하도록 만든다고 하더군. 자살을 시도하지만, 만약 성공했다면 아마 귀신이 되었겠지. 결국 그들은 죽음 대신에 심신을 텅 비워 나를 버리고 신을 모셔들이니…내림굿은 온갖 세상의 종교 중에서 가장 원초적이고 드라마틱한 장면을 보여주는 입교 의식인 것만 같아.


음, 그런데 요즘은 가짜가 너무 많이 창궐하는 성싶어. 조금만 유사한 증상이 보이면 스스로 성스런 신기라고 과신하곤 일단 큰돈을 빌려서라도 유명짜한 무당에게 갖다 바치며 거창스레 내림굿을 벌인다더군. 목적이 돈에 있으면 돈을 마중물로 일단 자격증부터 따놓아야겠지 뭐.


흐흐, 기독교의 목사 지망생 중에도 그런 경우가 많은 것 같아. 가만히 살펴보면 요사이 무당과 목사는 어딘지 비슷한 점이 꽤 있는 성싶거든. 그들은 성령 혹은 신령을 받아 모신다고 하는데, 일단 받은 건 인정해 준다 치더라도 초심 관리를 제대로 못 해 돈과 명예욕의 사도가 되어 버리고 만단 말야. 그러다가 범죄자의 문으로 들어서기도 하고…죄가 밝혀지고 실상이 드러나고 보면 일반인들보다 훨씬 파렴치하고 사악한 존재가 바로 종교인이라고 할 수 있어.

 

암튼 이 땅의 보통 사람들에게 허위의식과 비이지적인 광신증을 그들만큼 제대로 심어 주는 무리는 드물지 않을까? 그네들은 서로 마귀라고 지탄하지만, 닮은 데가 정말 많은 듯싶단 말야….


하긴 전문 연구가들은 오래 전부터 무교와 기독교의 유사성을 파악했으면서도 공식적인 발표는 기피하는 모양이더군. 그래도 만일 한국 기독교 속에 무속적인 요소와 통하는 점이 없었다면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와 꽤 관심을 끌긴 했을지언정 이토록 단시일에 거창스레 흥성하진 못했을 것이라는 말은 유언비어처럼 떠돌고 있지. 모르는 사람은 순진하게 모르고, 아는 사람은 모르는 척할 뿐…유언비어가 공론으로 변하기 전에 조속히 스스로 정화하는 게 좋을 텐데. 나중에 가서 하얀 소를 잃고 외양간까지 무너져 내리기 전에…그런데 내가 무슨 생각에 빠졌다가 여기까지 왔담?’

 

▲ 잊혀진 듯 정확하게 이해되지 못한 한국 무의 흔적을 성실한 고증과 대상에 대한 밀착으로 그려낸 영화 ‘영매-산 자와 죽은 자의 화해’ 한 장면.  

 

대체 하늘이란 무엇인가?


Q는 길을 되돌아 걸었다.


‘음, 그렇지…하근기는 제쳐두고, 상근기의 무당들이 과연 하늘 신의 뜻을 인간에게 제대로 전할 수 있는가?…그게 문제겠지. 그런데 대체 하늘이란 무엇인가? 지구에서 볼 때 옛날엔 사람 머리 위쪽의 허공만을 하늘이라 일컬었으나 지금은 천지 사방이 다 허공 하늘인걸 뭐. 지구 스스로 빙빙 돌면서 순간순간 끊임없이 사방팔방 360도로 천지를 뒤바꾸고 있는데, 어디에 유일무이한 하늘과 하느님이 존재해 옥좌에 앉아 계신단 말일까. 우리 인간이 상상하기 어려운 머나먼 구천 백천 너머 우주 한가운데에 존재한다면 모르지만….


만약 그럴 경우엔 유대교나 기독교, 가톨릭, 이슬람교, 힌두교, 유교, 도교, 일본 신도, 그리고 한국의 천도교나 무교 등도 모두 자기네 하늘만 진짜라고 지랄할 필요가 없는 거야. 혹시 현실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지역적 특색을 두루 활용한다면 이해할 만하지만…그러면 굳이 종교 통일을 하지 않아도 갖가지 꽃이 피어난 듯 더 아름다울 텐데…하지만 그들은 진리와 평화보다는 자기네 단체의 융성 발전을 위해 투쟁 살륙을 그치지 못하니…어느 날 문득 참 신의 징벌이 내릴지라, 흐흐흐….’


Q는 짐짓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만일 무당이나 여타 종교의 사제, 목사, 승려, 도사 등등이 정녕 사리사욕·아집·아견 따윌 싹 버리고 무심무아 상태가 된다면 그들이 받은 게 신령이든 성령이든 물령이든 색령이든 그 말씀을 한번 들어 볼 만한데 말이야…대체로 영혼보다는 육신의 영광 쪽에 1밀리미터쯤 더 비중을 두고 달리기를 하고 있거든. 신의 성령을 인간의 욕망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셈이지 뭐.


그런데 앞에 말한 거대 종교 외에 각 지역 부족국가의 군소 종교도 어떤 신이나 우상을 섬기든 간에 사람의 마음 즉 심령의 중요성은 부정하지 않더군. 누구든 심령을 잘 닦으면 신의 정식 아들딸이 될 뿐만 아니라 스스로 신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지. 문제는 그렇게 되는 순간 대부분 곧 오만방자해져 천지간에 온갖 폐해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이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종교계뿐만 아니라 특히 정치계, 경제계, 교육계, 법조계, 언론계, 군대 등에서 사이비 인신(人神)이 등장해 일반 국민들을 무척 위하는 척하면서 사실은 자신과 가족의 현세계 영달을 꾀하는 짓거리란 말씀이야.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악마 짓을 하며, 자기만 타락하긴 아까운지 온 국민을 멍청이로 만들어 히히 웃으며 추악해진 양심을 세탁하는가 몰라.


결국은 국민 각자가 깨어나 진실한 인간 또는 신인이 되어-물론 지금은 까마득하지만-마치 쇳덩어리를 비행기로 만들어 하늘 높이 띄우듯…머잖은 미래엔 평범한 사람들도 도(道)의 비행접시를 타고…신의 나라를 자유롭게 주체성과 책임감을 갖고 드나들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아하, 너무 낙관적인가? 그럼 좀 비관적일 경우엔 어찌 될까…아마 자기는 누구보다 자유롭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인공지능을 장착한 정치꾼과 무당의 노예가 되어…몸속에 플라스틱 가루 따위가 시나브로 축적된 채 그 금단 증상을 비웃는 듯 냉랭하게 히히 웃으며…거대한 초첨단 플라스틱 신전에 들어가 자신을 플라스틱 신인으로 만들어 달라고 기도할까?


흠, 실없는 개그라면 좋겠으나, 한국에서는 정치꾼들이 무슨 일을 주도하게 되면 항상 일반 국민들이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나쁜 최악의 결과를 불러오곤 하니 쉽사리 웃을 수도 없어. 개새끼들! 일부러 그렇게 만들려고 애써도 힘들 텐데…흠, 저열한 제정일치의 현대판이랄까. 아차, 화정 여사에게 한번 물어볼걸. 고조선 시절부터 변질돼 꼼틀꼼틀 이어 내려오고 있는….’


Q의 공상적인 독백은 갑작스런 경적 소리와 욕지거리로 인해 끊어졌다.


검고 번쩍거리는 벤츠 한 대가 앞길을 가로막고 선 채 흑표범처럼 으르렁거렸다. 당장 비켜나지 않으면 잡아먹겠다는 듯 험악스런 표정이었다.

 

개와 차는 주인을 닮는다!


Q는 가만히 서 있었다. 불시에 깜짝 놀라 어리둥절한 상태이기도 했지만, 대체 어찌 된 노릇인지 관망해 보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는 큰 거리와 이면도로가 교차하는 세 갈래 길에 서 있었다. 자기가 생각에 빠져 부주의한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곳은 삼거리이기 때문에 사람이든 차든 잠시 멈춰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 지점이다. 더구나 Q 자신은 아직 적으나마 10센티쯤은 골목길 같은 이면도로 안쪽에 있다.


상황을 판단해 보건대, 검정 벤츠 자체가 먼저 부주의하게 툭 튀어나와 방향을 틀어 제 갈 길로 진입하려다가 방해 물체인 그를 맞닥뜨리곤 급정거한 모양새였다. 방 안에서나 해야 할 공상을 바깥 길거리에서 한 건 물론 부적절하다. 하지만 좁은 골목길을 제맘대로 활개치며 내달리려 했다면 아직은 범죄자가 아니라 할지언정 역시 위법이며 잠재적인 살인자이다.


Q는 일단 길가로 물러나 고개를 숙였다.


예전에 인정을 알았던 사람들도 이젠 급속히 영악스러워져 가는데 사회제도는 느림보 거북이 보다 못하다. 거북이는 성실성이나마 있건만, 인간 군상들은 마치 정신병 든 토끼 새끼처럼 지혜도 총명함도 없이 이리저리 날뛰기만 했지 진정한 목표를 향한 진전이 없다….


“씨팔 쓰키, 뒈질라면 니 방구석에서 목을 매든지 면도날을 휙 그어! 왜 미친 개새끼처럼 어정거리며 남까지 살인자로 만들려고 지랄이야! 칵 갈아 버릴라, 썅!”


검은 벤츠의 유리창이 3분의 1쯤 내려가더니 검정 라이방을 걸친 사내가 거친 욕설을 내뱉었다.


Q는 차 쪽으로 다가섰다.


운전석의 사내 옆엔 얼굴이 징그러울 정도로 허여멀겋고 연붉은 선글라스를 낀 여자가 개 한 마리를 안은 채 껌을 짹짹 씹고 있었다.


“이리 나와.”


Q가 말했다.


“거지 같은 자식이 죽고 싶어 환장했군.”


벤츠 속의 사내가 이죽거렸다.


“일단 나와 봐. 때리진 않을 테니까. 너 같은 놈들은 자가용을 자신의 분신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몰라. 이 땅, 아니 아스팔트 위에 같이 한번 서 보자구. 그래도 그런 소리가 나올까, 응?”


“또라이 새끼가….”


“흥, 또라이든 광인이든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 왜냐하면 너희 같은 족속들은 인간의 마음보다는 승용차와 애견과 옷과 시계와 양말 따위의 네임밸류에 의해 사람을 평가하니 말야.”


“이 멍청아, 그건 사실이야. 리얼 판타지라니깐.”


Q는 차창 틈새로 손가락을 넣어 사내의 라이방을 벗기려 했다. 그 순간 목에 분홍빛 꽃 장식 리본을 단 개가 캉캉 짖으며 손을 물려고 덤볐다. 그는 손을 급히 빼냈다. 개의 대가리는 선팅된 유리를 통해 볼 때보다 훨씬 컸고 허연 이빨은 곧 깨물어 뜯을 듯 앙칼스러웠다.


“아가야, 그만 됐어. 미친 사람이니까 상대할 것 없잖니, 응? 자기, 그냥 가! 우리 아기가 저런 상놈한테 너무 놀랐나 봐.”


유리창이 곧장 스르르 올라가고 Q가 붙잡아 보려 했으나 검은 벤츠는 꽁무니에 매연만 남긴 채 급커브를 틀어 달아나 버렸다.


“살인 뺑소니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개년놈들!…음, 개와 차는 주인인 인간을 닮는 정도가 아니라 바로 그 인간 자체야.”
그는 개의 이빨이 슬쩍 닿았는지 피가 돋아난 검지손가락을 보며 중얼거렸다.

 

<다음 호에는 ‘우수의 계절’이 이어집니다>

글/김영권(소설가)의 다른기사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Share on Google+ band URL복사

최신기사

URL 복사
x

PC버전 맨위로 갱신

Copyright ⓒ (주)펜 그리고 자유.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