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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가장 비대하고 힘센 386세대가 이룬 공과 과 집중해부

386세대가 만든 세상 더 불공평…과연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송경 기자 l 기사입력 2019-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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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에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고, 그 후광으로 30대에 정계에 진출했으며, IMF의 파고 덕분에 윗세대가 사라진 직장에서 탄탄한 입지를 굳히고, 40대에 고임금과 부동산으로 빠르게 중산층으로 진입하고, 자신들만의 끈끈한 네트워크로 오랫동안 대한민국을 이끌어온 386세대. 그들을 전면적으로 분석하고 비판의 논의를 펼친 책이 서점가에서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정치·경제·교육·문화·사회 전 방면에서 386세대가 이룬 ‘공’과 386세대가 눈감은 ‘과’에 대해 본격적으로 해부한 사회비평서 <386 세대유감>(웅진지식하우스)이 바로 그 책이다. 이제는 50대가 된 386세대에게는 자신들이 걸어온 40년간의 발자취를 되돌아보고 기성세대의 역할을 고민하게 해주며, 20~30대 청년세대에게는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헬조선의 연원을 찾게 해주는 이 책은 유례없는 장기집권 과정에서 386세대가 자신들이 꿈꿨던 평등하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었는지, 앞으로도 이들에게 우리 사회의 지휘권을 맡겨도 될 것인지를 묻는다. 책의 주요 내용을 간추려 중계한다.

 


 

아픈 20~30대 청춘들, 386세대 향해 헬조선의 미필적 고의 캐물어

386에 의한, 386을 위한, 386의 나라…정의로운 사회 만들어왔나?

 

386세대에겐 1980년대에도, 1990년대에도, 2000년대에도 스피커 쥐어져
사회에 쩌렁쩌렁 한 목소리 낸 것을 넘어 사실상 오늘의 한국 사회 설계

 

386세대가 주도해서 만든 오늘의 세상 더 정의롭지 못한 건 아이러니
‘꿀 빨고 헬조선 만든 세대’ ‘사다리 걷어찬 세대’ ‘무능한 꼰대 집단’
젊은 사람들은 왜 우릴 낳았냐고, 왜 세상이 이 모양이냐고 묻기 시작

 

“우리는 386세대의 성공담을 들으며 20~30대를 보냈다. 대의로 점철된 20대를 보낸 386세대의 눈에는 등록금, 연애, 취업이 인생 최대 고민이었던 우리가 지질하게 보였을지 모른다. 그래도 사회에 나와 386세대와 몸도 부딪고 술잔도 부딪다 보니, 그들처럼 이 사회에서 허리 구실은 충분히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차올랐다.

 

그러나 우리의 자신감은 ‘넌 아직 어려’라는 말 앞에 여지 없이 무너졌다. 시간이 갈수록 월급이 주는 찰나의 기쁨과 안도감에 취했고, ‘난 아직 어려’라고 스스로 최면도 걸었다 어느덧 30대의 끝이 보이고 40대에 접어들었다. 벤처 붐에 올라타 막대한 부를 거머쥐었던 누군가의 30대 혹은 대통령의 오른팔, 왼팔이라 불렸던 또 다른 누군가의 30대는 우리에게 신기루같았다.”


386세대에게 헬조선의 미필적 고의를 캐묻는 3명의 청년세대가 <386세대 유감> 프롤로그에서 한 말이다.

 

▲ 민주화 쟁취의 주역으로 지목받아 정치권에 입성한 일부 엘리트만이 아니라, 연말 회식으로 영화 을 관람하고 눈시울을 적시며 영화관을 나온 직장 상사들과, 힘들었던 ‘우리 때’를 강조하며 아랫세대에게 손가락질하는 꼰대들 모두가 386세대로 묶인다. 사진은 영화 ‘1987’ 한 장면.    

 

헬조선의 미필적 고의 캐묻다!


언론계와 학계, 정치권에 몸담고 있는 3명의 젊은이, 즉 김정훈 CBS 기자, 심나리 서울대 박사과정 연구자, 김항기 국회의원 비서관은 아직도 학번과 출신학교를 물으며 자신들만의 끈끈한 네트워크로 대한민국 각계각층을 이끌고 있는 386세대를 향해 “유례없는 장기집권 과정에서 자신들이 꿈꿨던 공정하고 평등하며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왔는가. 앞으로도 이들에게 대한민국호의 지휘를 맡겨도 될 것인가”라며 물음표를 던진다.


“헛된 꿈을 흘려보내며 내 무능을 탓했다. 윗세대의 충실한 심부름꾼이 되어 우리의 자그마한 능력이라도 알아봐주길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기다리는 줄은 점점 길어졌다. X세대와 밀레니얼세대 뒤에 Z세대가 서고, IMF 외환위기로 일찌감치 시장에서 퇴출당한 유신세대도 중간중간 보였다. 줄이 길어지니 그들 간의 싸움도 생겨났다.

 

연애·결혼·희망 등 삶에서 소중한 것들을 포기한, 아픈 20대 청춘의 삶은 물론 길게 늘어선 줄 위에서 30대·40대의 삶까지 저당 잡혔다. 이러다 쉰 넘어서도 아프기만 할까 두렵다. 10여 년 전 아픈 청춘들은 88만원 세대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리고 이제야 우리를 그렇게 호명한 386세대에게 답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3인의 청년세대는 책 속에서 386세대에 대한 전면적인 분석과 비판의 논의를 펼친다. 1990년대에 처음 386세대라 명명된 이후 486을 넘어 586으로 이름을 바꿔 달아 ‘N86’이라 칭해지기도 하지만, 이들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건 역시 386이다.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상당수가 대학을 다니며 격변의 현대사를 관통했다. 그리고 30대부터는 우리 사회의 주축을 담당하며 의사결정을 해왔다. 30대에 쥔 권력을 여전히 유지하는 이들에겐 386이라는 이름이 가장 잘 어울린다.


세 청년은 자신들의 책이 목표한 주요 독자는 “단연코 386세대”라고 말한다. ‘도대체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얘네들이 이러나’ 하는 물음으로 책을 들어도 환영이란다. 후배 세대가 왜 ‘헬조선’을 탓하며 ‘탈조선’을 꿈꾸는지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면 절반의 성공이라는 것. 의도하지 않았지만 386세대가 스스로 헬조선 속 가해자일 수도 있음을 인정한다면 금상첨화란다.


“우리의 책은 ‘세상이 왜 이 모양이 된 거야’라고 묻는 후배 세대를 위한 것이다. ‘해도 안 된다’는 패배주의가 만연한 헬조선에 ‘하면 된다’는 믿음이 지배하던 시절이 분명 존재했었다. 우리가 원인 모를 수렁에 갇힌 게 아니란 걸 알고, 공적 토론의 장에서 세대별 손익계산서를 들이밀며 386세대의 미필적 고의에 대한 혐의를 함께 물을 수 있다면 우리들은 더없이 기쁠 것이다.”

 

▲ 청년세대들은 “자유와 평등을 사랑하고 진보를 외쳤던 386세대가 주도해 만든 오늘의 세상이 더 불공평하고 더 정의롭지 못한 것은 아이러니”라며 “과연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라고 캐묻는다.    

 

꿀 빨아 먹고 헬조선 만든 세대


“386세대에 관해 비판적 시각에서 이야기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꽤 오래전의 일이다. 그러나 생업에 치여 한 해, 두 해 시간만 보냈다. 386세대에 대해 양가감정이 있었기에 도마 위에 그들을 올리자니 부담도 없지 않았다. 그러다 같은 뜻을 품은 사람 셋이 의기투합을 하게 됐다.

 

집필을 시작하고 나니 마침 386세대에 대한 비판 담론이 여러 미디어를 통해 다뤄졌다. 386세대의 시대적 역할과 과제, 한계에 대한 논의도 십수 년째 기록되고 있다는 것 또한 책을 쓰는 과정에서 알았다. 우리의 문제의식이 더 낡고 후진 것은 아닌지 고민하면서도, 또 한편 우리의 생각과 감정이 비단 우리만의 것이 아닌 ‘시대의 상식’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면서도 세 청년세대는 “다만 우려스러웠던 것은 진보와 보수 이념 대결에 불필요한 불쏘시개 하나 더 던져넣는 게 아닐까 하는 점”이라고 털어놓았다.


“386세대를 정치권 특정 그룹으로 협소하게 이해하는 풍토가 있음을 알지만, 책을 훑어보기만 해도 우리가 이들 그룹으로 논의를 좁히지 않고 386세대 전반으로 논의를 넓히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세대 갈등만 부추기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도 했다.

 

하지만 386세대의 문제는 더는 진보와 보수의 관점으로 나눠봐야 의미가 없는 세대의 문제가 된 지 오래다. 세대 간 이간질로 어부지리를 노리는 이들 때문에 엄연히 존재하는 갈등을 눈감을 수는 없다. 이미 곪기 시작한 갈등을 수면 위로 끌어내 합께 풀어 보자는 취지이지, 세대 갈등을 부추겨 무언가를 얻고자 함은 아니다. 386세대를 발가벗겨 손가락질하려는 시도는 더더욱 아니다. 앞선 많은 고민 위에 벽돌 한 장 더 얹는 정도라도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이들은 그러면서도 자신들을 향해 “잠시 시계를 돌려 1980년 5월18일과 1987년 6월10일로 거슬러 가보자. 우리가 그 역사적 사건의 한복판에 서 있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무자비하게 시민을 짓밟는 계엄군에 대항해 총을 들고 싸울 수 있을까? 독재에 맞서 짱돌이든 죽창이든 들고 거리로 나설 수 있을까?”라는 질문도 던진다. 


“1987년 6월항쟁이 독재에 종언을 고하고 민주화라는 해피엔딩을 이루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기에, 영화 <1987>은 감동 어린 후일담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결말을 모른 채 영화 속 장면과도 같은 현실에 놓인다면 어떨까? 존재 자체가 고통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1980년대 군부독재의 긴 장막 속에서 젊음이 한창이던 386세대도 그랬을 것이다. 독재정권과의 싸움에서 언젠가 승리하리라 믿었겠지만 그날이 오기 전에 내 젊음과 목숨이 먼저 소멸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컸을 것이다. 그들이 느꼈을 공포를 짐작하기란 쉽지 않다. 그 자리에 함께 있지 않고서는 감히 그들의 번뇌를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이러한 많은 젊음의 희생이 모이고 모여 1987년의 광영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진실이다. 그렇게 역사의 한 장면을 장식했던 사람들 가운데 일부가 386세대라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지은이들은 “그러나 30년이 지난 오늘, 안타깝게도 386세대를 향한 날 선 분노와 조롱이 온라인 공간을 뒤덮고 있다”면서 “386세대는 ‘꿀 빨아 먹고 헬조선 만든 세대’ ‘사다리 걷어찬 세대’ ‘무능한 꼰대 집단’이라고 불린다”고 지적한다.


지난 3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자유와 평등을 사랑하고 진보를 외쳤던 386세대가 주도해 만든 오늘의 세상이 더 불공평하고 더 정의롭지 못한 것은 아이러니다. 과연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대하고 가장 힘센 사회 구석구석에서 의제설정 및 결정 권한을 가진 386세대에 정면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게 부담스럽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386세대 내부에서 간간이 터져 나오는 자성의 목소리는 십수 년 동안 찻잔 속 태풍처럼 잔잔히 소용돌이치다 사그라들었다. 줄탁동시라고 새가 알을 깨고 나올 때도 새끼와 어미가 안팎에서 동시에 쪼아야 한다. 역사상 어느 기득권도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지 않았다. 386세대에 속하지 않은, 그것도 윗세대가 아닌 아랫세대가 정색하고 꺼내놓는 첫 비판서라는 점에 우리는 뿌듯함과 동시에 한없는 무게감을 느낀다.”

 

누가 우리 미래 도둑질해갔나


“올 것이 온 걸까?” 88만원 세대라는 논쟁적 화두로 일찌감치 우리 사회에 일침을 놓은 주인공이자 스스로 386세대이기도 한 경제학자 우석훈 교수는 <386세대 유감>의 해제에서 예고된 시간이 도래한 듯 글을 시작한다.


“386세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봇물 터진 듯 나온다. IMF 경제위기 당시 한국의 전체 실업률보다 훨씬 높은 실업률을 견디며 월급 88만원의 비정규직 인생을 사는 청년세대의 분노는 이제 암울한 대한민국을 만든 기성세대를 향하고 있다.

 

‘우리 때는 말이야’라는 명대사로 시작되는 그들의 찬란한 과거가 더 이상 자신들의 것이 될 수 없음을 알기에, 젊은 사람들은 왜 우리를 낳았느냐고, 왜 세상이 이 모양이냐고 기성세대에게 묻기 시작했다. 그들의 손가락은 기성세대 중에서도 ‘핵인싸’ 386세대를 가리킨다. 1960년생이 정년을 1년 남긴 2019년, 정년연장 논의가 스멀스멀 나오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실제로 세 청년세대는 “1980~2019년, 축복받은 386세대가 걸어온 40년을 보면 헬조선이 보인다”고 짚는다. 


“이제껏 386세대에 대한 냉철한 분석이 없었다는 점이 놀라울 정도다. 그나마 있었던 386세대에 대한 분석은 운동권 출신의 정치인들이나 벤처 창업에 성공한 기업인들에 초점이 맞춰졌다. 386세대의 코호트 효과를 따져본 경험이 우리에겐 사실상 전무하다. 386세대가 아무런 견제 없이 우리 사회의 제왕으로 군림하게 된 지금, 그에 걸맞은 분석이 시급히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386세대가 강렬한 경험을 공유하며 망탈리테와 같은 공통의 성질을 타고난 듯 지니게 됐다면, 이를 ‘386 DNA’라고 부를 수도 있지 않을까. 386세대에게 DNA와 같이 새겨진 집단적 심성은 80년대 주류 트렌드가 되어, 당시 20대의 나이로 세상을 익혔던 모두에게 유행처럼 퍼졌다. 그저 30여 년 전, 돌아가는 나라 꼴에 한마디씩 섞었던 그들이라면 ‘민주화’를 입에 올리지 않은 사람이 없었을 것이고 그들 모두는 자칭 타칭 민주화 세력이 되어버렸다.”


“1980년대 20세의 나이로 대학생이 돼서 한국 사회의 한 축이 된 이들이 현재는 50대가 되었다. 그러한 386세대에겐 1980년대에도, 1990년대에도, 또 2000년대에 와서도 늘 스피커가 쥐어져 있다. 사회에 쩌렁쩌렁 한 목소리를 낸 것을 넘어 사실상 오늘의 한국 사회를 설계해왔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386에 의한, 386을 위한, 386의 나라다. 도무지 늙지 않는 불로(不老) 세대의 최장기 집권, 이것이 코호트 효과 관점에서 본 386세대의 가장 큰 특징이다.”


“다소 늦었지만 지금 쓰는 386세대론은, 어찌 보면 10여 년 전 출판된 <88만원 세대>의 프리퀄이다. 우리가 쓰는 이 글은 여전히 ‘월 급여 88만 원’의 한계를 넘지 못하는 오늘날 청년 세대에게 그들이 속한 사회의 연원을 설명해줄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케바케(case-by-case)’ 아니냐고 반박할지도 모른다. 딱 떨어지는 인과관계를 입증해내기도 어렵지만, 그렇다고 마냥 입을 다물 수만은 없다.”


영국에서는 2019년 6월, <10년간의 도둑질(The Theft of a Decade)>과 <할머니 도둑질 좀 그만해요(Stop Mug -ging Grandma)>가 출판되어 화제를 모았다. <386 세대유감>과 마찬가지로 베이비부머 세대와 젊은 세대 간에 벌어지고 있는 세대 전쟁의 전말과 해결책을 다룬 신간들이다.


영국에서 발행하는 국제경제 전문 조간신문이자 세계 3대 신문의 하나로 꼽히는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 신간들을 “세대 간 전쟁: 누가 밀레니얼 세대의 미래를 도둑질해갔는가?”라는 제목의 서평 기사로 다루며, “과거에 계급이나 젠더, 인종으로 갈라지던 투표성향이 이제는 연령대로 확연히 갈라지고 있다”고 보도해 주목을 끌었다.

 

1970년대 영국의 노동당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70대가 되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보수당을 선택하고 있으며, 반대로 빈곤해진 젊은 세대에서 노동당 지지가 뚜렷하다는 것이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도 버니 샌더스의 지지자들이 대부분 20대였다는 점을 상기해본다면 세대 문제는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고,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의 베이비부머, 386세대를 향한 젊은 세대의 분노가 단지 386세대 인사를 등용한 집권 세력으로 귀결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사회 병폐와 386의 역할


베이비부머 세대에게 부와 권력과 자원이 집중되어 생긴 사회문제와 세대 갈등은 이제 전 세계인이 풀어야 할 숙제이며, 이 문제의 한국화한 키워드가 바로 ‘386세대’라고 보아야 한다는 점에서 <386 세대유감> 출간 의의는 더욱 크다.


이들이 대학등록금의 가치, 청년실업률, 청년노동의 가치, 서울시 아파트를 사는 데 걸리는 시간 등 다양한 측면에서 1960년대생과 1970년대생, 1980년대생을 비교한 ‘세대별 손익계산서’는 왜 세대 문제가 향후 한국 사회를 이끌어갈 중요한 프레임인지를 잘 보여준다. 또한 이들은 ‘민주화 공로자인가, 수혜자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386세대의 ‘우리 때’가 가리키는 1980년대 대학가로 독자들을 소환한다.


“만약 누군가 1981년에 대학에 입학해 1990년 전후에 졸업했다면 그는 전형적인 386이다. 여유 있게 대학에 들어와 보니 선배들은 고개를 떨구고 있었고, 기세등등하게 조직을 갖춰 학교 밖으로 영향력을 키웠으며, 마침내 민주화까지 이뤘다는 평가를 받았다. 새로 마련된 헌법에 따른 대통령 직선을 경험하고,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는 올림픽을 관람하고 나니 대학생활이 끝나갔다. 바통을 넘겨받은 후배들이 판판이 깨지며 흩어지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우면서도 ‘우리 땐 말이야…’로 시작하는 잔소리가 쏟아져 나온다.

 

386세대의 우월감은 그 어떤 세대와도 비교할 수 없다. ‘모든 세대는 자기 세대가 앞선 세대보다 더 많이 알고, 다음 세대보다 더 현명하다고 믿는다’는 조지 오웰의 말은, 386세대에 가장 잘 들어맞는다.”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 운동과 서울역 회군으로 뼈아프게 무릎을 꿇었던 선배들이 사라지자 캠퍼스를 차지한 사람들이 바로 386이다. 1981년부터 늘어난 대학 입학정원은 ‘대오’를 이룬 학생운동권의 토양이 되어주었다.

 

최루탄과 돌멩이가 난무한 암울한 시절이었지만 좌절의 경험이 없는 이들은 ‘승리에 대한 확신, 조직력을 바탕으로 한 강고한 투쟁력, 타협하기 어려운 상명하복의 교조적 문화, 다른 목소리를 포용하지 않는 적대적 계파주의’라는 강력한 ‘386 DNA’를 탑재시켰다. 학생운동권에서 발원한 DNA는 1980년대 청년문화를 누리고 6월항쟁의 승리를 함께 경험한 386세대 전체에게 공통의 정체성으로 뿌리내렸다.


이처럼 이들은 386세대를 소수의 ‘엘리트 그룹’으로 축소하지 않고, 하나의 연령 집단이 가진 공통의 경험과 정서라는 ‘코호트’ 개념으로 설명하며 분석 대상을 ‘386세대 전체’로 확장한다.

 

민주화 쟁취의 주역으로 지목받아 정치권에 입성한 일부 엘리트만이 아니라, 연말 회식으로 영화 <1987>을 관람하고 눈시울을 적시며 영화관을 나온 직장 상사들과, 힘들었던 ‘우리 때’를 강조하며 아랫세대에게 손가락질하는 꼰대들 모두가 386세대로 묶인다. 이들에게는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를 쟁취했다는 특별한 자부심이 있다.


그래서 세 지은이는 묻는다. ‘민주화 훈장이 386세대의 가슴팍에만 독점적으로 달리는 것은 정당한가. 재야 운동권과 광장을 메운 시민들, 노동자 대투쟁으로 불을 지핀 노동자들은 어디로 갔는가. 오늘날 출신학교와 학번으로 줄 세우고 공고한 네트워크를 만들어 이익을 주고받는 386 독식사회가 그들이 경험한 민주화 투쟁에 기원을 둔 것은 아닌가’라고.

 

386세대가 사회 각계에서 ‘젊은 피’로 등장하여 일찌감치 의사결정권을 갖는 데 명분이 되어주었던 1980년대 민주화 투쟁과 학생운동의 경험은 이제 재평가의 시간을 맞이한다.

 

386세대와 광적인 교육열


또한 이들은 운 좋은 386세대가 걸어온 40년의 발자취도 좇는다. 한국 사회의 4대 병폐가 노골화되는 데 386세대는 어떤 역할을 했을까.

 

▲ 드라마 ‘스카이 캐슬’에 빗대자면, 사교육 시장을 팽창시켜 돈을 번 ‘김주영 샘’도, 사교육으로 자식을 내몰아 ‘혜나’와 ‘예서’ 같은 희생자들을 낳은 부모들 또한 386세대였다.    

 

내수경제가 전성기에 오르고 불평등이 가장 낮아진 1988~1997년에 사회에 진입한 이들 세대는 매년 높은 연봉 인상으로 시드머니를 손에 쥐었고, 청약통장을 가지고 부동산 안정기에 신도시 아파트를 매입했으며, 분양가 상한제가 폐지되고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자 엄청난 시세차익을 누렸다.

 

한국현대사를 통틀어 가장 ‘행운’을 누린 시기였고, 386세대는 그야말로 ‘로또’를 맞은 세대였다. 이들은 1997년 IMF 경제위기로 한창 일할 나이에 구조조정당한 윗세대, 그리고 높은 실업률로 공시생과 취준생으로 전전하는 아랫세대에 비하자면 놀라울 정도의 경제적 안정성과 자산축적의 기회를 누렸다. 여기에 386이 주도한 정규직 중심의 공고한 노동조합도 힘을 보탰다.


“386세대가 사교육으로 돈을 많이 번 것은 대수도 아니다. 학부모가 된 386세대가 광적인 교육열로 자식들을 다그쳤다는 것도 가정사일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알게 모르게 바꿔놓은 암담한 교육 현실이 대를 이어 심화 확대되고 있음을 생각할 때, 그 안에서 생명이 꺼져가고 있음을 돌아볼 때 꼭 묻고 싶다. 교육이라는 그럴 듯한 명분 아래 무슨 짓을 한지 알기나 하냐고. 그저 ‘이럴 줄 몰랐다’, ‘내 탓만은 아니다’라고만 할 것인가?”


실제로 운 좋게 부의 추월차선을 타고 사다리를 걷어찬 386세대는 대학 서열화와 사교육 문제를 심화하는 데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드라마 <스카이 캐슬>에 빗대자면, 사교육 시장을 팽창시켜 돈을 번 ‘김주영 샘’도, 사교육으로 자식을 내몰아 ‘혜나’와 ‘예서’ 같은 희생자들을 낳은 부모들 또한 386세대였다.

 

50대 꼰대들의 갑질 문화와 여성을 도구화하는 젠더 의식 또한 도마 위에 오른다. 자녀의 대학 부정 입학에 대학원생을 동원한 갑질 교수나 법인카드로 방울토마토를 사고 내연녀와의 데이트 비용을 쓴 공공기관의 수장들, 공사 구분이 불확실한 꼰대들에게 용감한 젊은이들은 이렇게 묻는다. “그거 규정에 있어요?”


386세대가 뭐 그리 잘못했나, 기득권 세력을 386세대로 규정할 수 있을까, 50대라면 사회 꼭대기에서 의사결정권을 갖는 게 당연하지 않나, 의문이 생긴다면 <386 세대유감>가 날카로운 메스를 들고 해부한 낱낱의 증거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세상이 왜 이 모양이 된 거야?!


누군가는 억울할 것이다. 여전히 개인의 양심을 지키며 사회정의를 위해 싸우는 386도 많다. 그러나 386세대가 자의든 타의든, 적극적 가담자이든 소극적 방관자이든 사회 각 분야에서 잘못된 의사결정을 했고, 그 결과 대한민국은 헬조선이 되었다는 사실 또한 부인할 수 없다. 386세대에게는 헬조선의 ‘미필적 고의’가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로 나쁜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음을 알면서도 그 행위를 행했다.


“한때 대의를 외쳤던 이들이 1년 11개월짜리 계약서를 만들어 내밀고 노동조합 가입을 방해하는가 하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가르며 노노(勞勞) 싸움을 채찍질” 했다면, 그들이 헬조선의 가해자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사회를 특정 세대가 의도적으로 주도했다고 말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자의든 타의든 “대한민국의 제도는 386세대에게 유리하게 작동됐다. 비정규직보호법, 신도시 개발, 분양가 상한제 폐지와 같은 제도가 386세대에게 맞춤형으로 제공”됐다. 그러므로 2019년의 헬조선은 386세대가 자신들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눈감고 허용해준 소악(小惡)들이 모여 만들어진 거악(巨惡)이라 해야 맞다.


“헬조선이 되는 데 일조한 기득권, 그중에서도 386세대는 어쩌면 모를지도 모른다. 혹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오랜 시간 한국 사회의 주류 세대 역할을 떠맡으면서 선택해온 것들이 어떤 나쁜 결과를 가져왔는지에 대해. 큰 불의에는 맞서 싸우고 분노했지만 생활 속 작은 불의들에 눈감고 내 앞의 작은 불이익은 참지 못한 역사가 오늘의 현실을 만들었다.헬조선 탄생을 주동하거나 최소한 가담하고, 방관해온 386세대의 미필적고 의에 대해 ‘가해자성’을 물어야 할 시간이다.”


지하철 자리에 앉아 스마트폰 게임 삼매경에 빠진 채 배부른 임신부도 허리 굽은 노인도 안중에 없는 남녀노소들, 바로 우리의 자화상이다. 약자들 사이에 자리 쟁탈전을 벌이는 풍경은 적은 수의 의자를 서로 차지하려고 다툼을 벌이는 ‘의자게임’과 같다. 노인 절반이 빈곤의 늪에 빠져 있고 청년 취업자 절반이 비정규직인 우리 사회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팔짱 낀 채 모른 체한다면 어떤 변화도 기대할 수 없다.


그래서 세 청년세대는 “게임의 규칙 자체에 의문을 품어야 한다”면서 386세대를 향해 “염치와 배려의 미덕을 풍기라”고 일갈한다.


“우리 모두가 게임판을 바꿀 ‘게임체인저’가 되어야 한다고. 특정 세대가 주도하지 않는 게임판, 모든 세대가 각자의 임무를 하고 함께 이익을 나누는 팀플레이, 이것이 후퇴한 대한민국을 일으킬 시발점이 될 것이다.”


“평등하고 공정하며 정의로운 세상은 30여 년 전 386세대가 눈물 흘리며 바랐던 그 세상과 다르지 않다. 그들이 바랐던 혁명이 아직 매듭지어지지 않은 현재 진행형이라면, 세대 독점의 해소는 비록 늦었지만 혁명의 완결로 가는 길일 수 있다. 이제는 혁명의 열정을 뽐내는 주체가 아니라 염치와 배려의 미덕을 풍기는 혁명의 지원군으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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