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삶의 공간 ‘집’에 대한 ‘철학·정책’은 언제야 안정될까

아파트, 고향도 될 수 있다…‘집=삶’이라는 개념 필요해

문병곤 기자 l 기사입력 2018-11-15

본문듣기

가 -가 +

아직 우리 사회에선 ‘고향’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아늑한 오솔길이나 논밭의 풍경, 그도 아니면 자그만 전원주택 정도의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최근 방영했던 TV드라마 <응답하라 1988>은 주인공들이 많은 시간을 보냈던 골목과 작은 주택 '고향'이 될 수 있다는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기도 했다. 드라마에서 흘러나오던 노래 '혜화동'을 들으면 아련한 골목의 모습이 연상되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지금 2030세대가 가지고 있는 고향의 이미지도 비슷하다. 이들도 대부분 어린시절을 논밭으로 배경삼지 않았다. <응답하라 1988>에 나오는 평상이 있는 작은 골목길도 아니다. 이들에겐 아파트 복도나 단지 내에 꾸려진 작은 놀이터와 길이 그들의 고향이었다. 


 

▲ 영화 <집의 시간들> 스틸 <사진제공=KT&G 상상마당>  


영화 ‘집의 시간들’…철거 앞둔 둔촌주공아파트 담아

오락가락한 주택 정책, 부동산 시장에 혼란 가져올 뿐

 

최근 들썩이던 서울 집값이 안정화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다. 주택 시장 안정화를 두고 부동산 전문가들은 ‘아직 장담 못 한다’ ‘방심하지 말 것’이라고 조언하고 있다. 사람들은 마치 주식을 언제 팔지 고민하는 것처럼 아파트값의 오르내림에 일희일비한다. 자연스럽게 아파트는 투기의 수단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2030세대에게 아파트는 단순히 투자수단이나 잠시 스쳐가는 공간이 아니다. 그들이 어린 시절을 나고 보낸 아파트는 그들에게 있어서 '고향'이다. 혹자는 어떻게 아파트가 고향이 될 수 있냐고 반문하겠지만, 언제나 어린아이들이 그러했듯 아파트는 그들의 상상이 더해져 형형색색으로 변한다. 아이들의 상상이 사라진 아파트는 그때야말로 천편일률적으로 보일 것이다.

 

 

집=삶의 공간

지난 10월25일 개봉한 영화 <집의 시간들>은 폐쇄를 앞두고 있는 서울 둔촌동 주공아파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 <집의 시간들>의 라야 감독은 재건축을 앞두고 있는 집에 대해 실제 주민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고 싶다고 밝힌다. 돈과 숫자에 대한 소식과 아파트에 대한 애정은 자주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추억이 많음에도 재건축이 잘 되길 바랄 수도 있고, 녹물이 나오는 수도 때문에 짜증이 나도 단지가 품고 있는 작은 녹지를 사랑할 수도 있다. 모든 집이 그러하듯이 그곳엔 다양한 형태의 시간과 애정이 있는 것이다. 

 

<집의 시간들>은 둔촌 주공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이인규씨의 독립 출판물 <안녕, 둔총주공아파트>의 연장선상에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둔촌주공아파트는 1980년 준공돼 143개동 5930세대가 거주하는 대규모 단지로 조성됐다. 1999년부터 재건축 논의가 시작돼 현재는 철거돼 재건축에 들어갔다. 

 

<집의 시간들>의 라야 감독은 곧 사라지게 될 공간이 주민의 목소리를 빌려 이야기하듯 영화에 주민들을 직접 내세우지 않는다. 그저 그들의 목소리만 흘러나올 뿐 카메라의 시선은 아파트가 안고 있는 공간에 집중하고 있다. 

 

감독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감성팔이’란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미화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며 “사라지기 직전의 둔촌주공아파트가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이어 감독은 “부모님 세대는 주택이 집이지, 어떻게 아파트가 고향이냐. 답답하다. 아파트는 너무 천편일률적이지 않냐고 하시는데, 같은 아파트도 누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매력이 다르다”며 “아파트도 생활 공간인제 부동산 투기 같은 얘기만 나오는 게 아쉽던 차에 <딥의 시간들>프로젝트가 반가웠다”고 밝혔다. 

 

라야 감독이 둔촌주공아파트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리 거창하고 담대하지 않다. 그저 사라져가는 것을 지켜보고 눈에 담고 필름에 담는다. 마치 한 사람의 생이 마감되고 새로운 아이들의 삶이 자라나듯이 둔촌주공아파트의 시간은 끝을 맺지만 새롭게 생겨난 공간에서 새로운 추억과 삶은 자라날 수 있다.

 

오락가락 주택 정책

주택이 삶의 공간이 아닌 투자의 대상으로 바뀌게 된 것은 역대 정부들이 해왔던 부동산 가격관련 공약들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급작스럽게 바뀌는 부동산 정책들 때문에 집을 사고파는 일은 주식을 사고파는 일처럼 변해버린 것이다. 

 

주택시장이 달아오르면 정부는 규제 지역을 설정하고, 대출을 어렵게 하고, 주택을 사고팔 때 혹은 ‘살고만 있어도’ 무거운 세금을 부과한다. 신도시 건설 등 대규모 주택 공급 정책들도 발표한다.주택가격이 지나치게 내려가면 정부는 다주택자에 대해 세제 혜택은 물론 청약 불이익도 없애준다. 목돈이 없는 무주택자를 위한 다양한 대출상품도 출시한다. 심지어 “빚내서 집을 사라”고 부추기기까지 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국내외 경기와 금리, 주택정책, 교통 등 사회기반시설, 인구의 이동과 출산율, 분화되는 가족, 입시제도, 일자리 등 부동산시장을 움직이는 요인들은 많다. 이 중 가장 직접적 영향을 주는 것은 정부의 주택정책이다.

 

중요한 것은 역대 정부들이 주택에 대해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느냐는 것이다. 집을 경제의 일부로 보느냐, 주거의 일부로 보느냐는 차이다. 만약 정부가 부동산 시장을 '경제'로 바라볼 경우, 경제와 관련된 정책들은 '안정화'에 급급해 정책은 '오락가락’할 수밖에 없었다.

 

경제는 ‘불확실성’이 커지면 혼란이 온다. 뭐가 어떻게 될지 모르면 가격 등의 변동성은 더욱 커진다. 주택시장도 마찬가지다. 정부 정책이 일관성을 잃으면 불확실성은 커지고, 시장은 요동친다. 특히 우리의 주택정책 수립은 늘 ‘뒷북치기’ 식이다. 주택가격이 오르면 규제책을 내놓고, 가격이 떨어지면 부양책을 발표한다. 그런데 정책 효과도 후행적이다. 시행과 함께 곧바로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이때 이 틈을 노리는 세력이 등장한다. 이른바 ‘투자·투기 세력’이다.

 

정부 관계자는 “주택시장은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이를 사전에 완벽하게 제거하지 않는 한 정부 정책은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지만,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의 견해는 다르다. “주택정책은 시장 흐름에 따라 달리 대응해야 하겠지만, 주택정책에 대한 정부의 철학은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문가들은 “주택정책은 경기 조절이 아니라 국민의 주거 안정에 최우선 목표를 두어야 한다”며 “경제 상황에 따라 규제와 완화가 반복된다면 시장의 투기세력 내성만 키운다”고 지적한다. 

 

이와 비슷하게 시민단체들은 “정부의 주택시장 경기 조절정책이 ‘투기꾼’들에게 놀이터를 제공하고 있다”며 “정부가 일관된 계획 하에 주택시장 안정화 정책을 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분양주택 실수요자와 공공·민간임대사업자를 중심으로 주택공급이 될 수 있도록 정책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penfree@hanmail.net

문병곤 기자의 다른기사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Share on Google+ band URL복사
URL 복사
x

PC버전 맨위로 갱신

Copyright ⓒ (주)펜 그리고 자유.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