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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목사 성공하려면…

이승철 칼럼니스트 l 기사입력 2018-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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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철    

신학생 인도인(印道仁)은 가까운 젊은 목사에게 ‘교회가 나서야 한다.’며 아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1910년 한일합병이 되고 전라도 일원에 이른바 ‘남한대토벌작전’을 펼쳐져 헌병경찰은 한민족 애국지사를 닥치는 대로 끌어갔다. 일단 잡혀가면 △고문에 몸이 상하고 △감옥살이에 살림이 날아갔으며 △목숨을 빼앗기까지 했다. 이 세 가지 고초를 몽땅 겪은 인물이 완주군 비봉면에 있었으나 기억도 이야기도 기록도 사라져 애석한 죽음으로만 치부되니 통분할 일이다. 그 주인공이 바로 한말 의병 이원옥·이순옥(李順玉) 형제이다. 1910년 두 청년은 외숙 유치복(柳致福) 의진(義陣)에서 간부로 활약하다 잡혀 15년 징역형을 받아 형은 옥사했으며, 아우 순옥은 11년 만에 출옥하자마자 자결했다. 국권 침탈에 맞서 외숙을 따랐던 양인은 결국 이 꼴이 되었다. 원옥·순옥 형제의 처참한 사연이 1925년 9월 22일자 <동아일보> 낡은 신문철 속에서 바래간다. 순옥 씨가 감옥에서 나와 보니 집과 살림은 간 데가 없고 처는 개가했다. 의사는 최후 선택이 자결이었다. 이 기사를 보는 순간 볼때기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해방된 우리 민족들은 분단에 이어 전쟁을 치르다보니 애국지사가 눈에 들어올 겨를이 없었고, 뒤늦게 사정을 하여(?) 1991, 99 양년에 걸쳐 유치복과 그 생질에게 각각 건국훈장 애국장이 내려졌다. 모든 걸 다 빼앗긴 고인에게 고작 내린 예우다. 유치복 의병장은 다행히 깨이고 열린 씨족이 있어 1982년 내월리에 ‘고흥류씨 일문9의사 사적비’를 세워 그 이름이라도 알렸으나 이씨 형제는 젊은 나이에 죽고 챙겨줄 사람이 없다보니 그냥 묻혀버렸다. 옛날 유림들은 정려(旌閭)와 사우(祠宇)를 세워 충효정렬을 선양했는데 이젠 그런 저력도 의기도 사라진지 오래이다. 이런 변화에 대체할 새 세력이 바로 교회이다. 교회는 재력이 있고 모여서 이야기할 사람이 많다. 시골 목회자는 고장 위인을 찾아 추모케 하며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면 자신이 먼저 높아져 여러 복을 듬뿍 받을 수 있다. 식민통치 기간에는 알아도 말을 못했고, 독립 후에는 싸우느라 잊었으며, 이젠 아는 사람조차 없으니 교회에서 나설 수밖에 없다. 교회마저 외면하면 한국 역사는 끝장이다. 목사들이 교회 밖으로 나와 ‘중립은 없다’하며 몸값을 쑥쑥 올려야 한다.”

 

▲ 역사현장을 찾아서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낯 뜨겁고 돌멩이로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다. 요즘 신학생들의 생각이 예전과 다르단 걸 느끼니 부끄러우며 도전받는 기분이라 겁이 난다.

 

지교회 목사들이 ‘순종이 미덕’이라 강조하면 조용히 따라와 탈이 없었는데 언제 봇물이 터질지를 모르겠다. 인도인의 지적이 맞다. 사람이 바른 일을 외면하면 교인 수천만 명인들 뭣 하랴! 그렇다. 교역자로서 지역사(史)에 어두움을 깨닫고는 학자 만나기를 다짐했다.

 

교회마다 걸림 돌[石:석]장로’들도 문제. 고민하는 목사만이 생존한다.

 

esc2691@naver.com


■ 필자 : 이승철 /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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