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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친숙해 잊고 살던 골목길 여행

우연히 들어선 그 골목에서 숨은 재미 찾아보라!

정리/김수정 기자 l 기사입력 2020-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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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산책하기 가장 좋은 계절이다.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맑고 밝고 활달하다. 일찍이 수필가 이양하가 예찬했듯 이즈음의 신록에는, 우리의 마음에 참다운 기쁨과 위안을 주는 이상한 힘이 있다.

 

5월에는 너무 친숙하여 잊고 살던 골목길로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아기자기한 골목길을 느릿느릿 이야기꽃을 피우며 걸어도 좋고, 소설이나 영화 소품 같은 골목길을 탐색하며 걸어도 좋지 아니한가! “골목길은 걷는 맛이 있다. 골목길을 걸으면 속도감 있는 차 안에서는 읽어내지 못할 우리 주변의 소소한 삶, 역사와 문화를 온전히 느낄 수 있다. 풍부한 이야기를 갖고 도시 전체를 연결하는 골목길은 온몸에 좋은 영양분을 공급하는 모세혈관과도 같다.”

 

서울시의 주요 정책으로 ‘걷는 도시 서울’을 내세운 박원순 서울시장의 말이다.

 

불규칙적이고 무형식적인 골목길에서 한국의 현대사를 압축한 듯한 골목길까지…. 골목길에서는 아늑한 서민생활을 느낄 수 있고, 현대 사회에서 사라지는 낭만과 추억을 엿볼 수 있다. 팔도강산 골목골목 이채로운 풍경 속으로 들어가보자.

 


 

원주미로시장 골목엔 오래된 가게와 새로운 가게 사이좋게 공존
시장 구경에 빠져 이리저리 무작정 걷다 보면 막다른 길 나타나

 

성안마을 매력은 골목골목 채운 손때 묻은 집, 소박한 식당, 전파상
시곗바늘 과거로 돌린 듯한 풍경…충청도 사내처럼 속 깊은 정 물씬

 

1. 원주의 골목길 여행


“길 잃는 것쯤은 아무 문제도 아니야. 우리는 지금 세상을 탐험하는 중이야.” 카트린 파시히와 알렉스 숄츠는 <여행의 기술>에서 길 잃기를 독려하며 “길을 잃어야 새로운 세계를 발견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아무 길이나 일단 가보기, 다른 데 정신 팔고 가기, 의도적으로 다른 길 들어서기 등 책에서 본 독특한 여행의 기술을 실행에 옮길 장소를 물색한다. 미로처럼 이어지는 골목과 개성 있는 상점이 늘어선 시장의 합, 강원도 원주 미로예술시장으로 낙점!

 

▲ 골목과 시장의 만남, 원주 미로예술시장. 


친절한 길 찾기 애플리케이션이 스마트폰에 장착된 요즘은 길 잃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원주중앙시장 2층에 있는 미로예술시장은 입구부터 찾아 헤맬지 모른다. 원주중앙시장은 1970년 건립한 2층짜리 철근콘크리트 건물을 재건축 없이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1층과 2층은 안팎의 여러 계단을 통해 이어진다. 지정된 출입구가 있는 게 아니라는 말씀. 시장 1층에서 눈에 보이는 아무 계단이나 올라가면 된다.


원주중앙시장 1층과 2층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1층은 주단 가게와 옷 가게, 음식점 등이 모인 전통시장이고, 2층은 카페와 공방, 문화 공간이 어우러져 뉴트로 분위기가 풍긴다. 원주중앙시장은 자유시장, 중원전통시장 등 여러 시장과 이어지고 번화가인 중앙로문화의거리와 맞닿아, 전성기만 못한 시절에도 손님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1층에 국한됐다.

 

▲ 전통시장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한 원주중앙시장 1층.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떨어져 방치된 2층은 2010년대 들어 ‘예술로 연주하는 중앙시장’ 레지던스 사업이 진행되고, 문화 관광형 시장과 청년몰 사업에 선정되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미로예술시장이라는 별칭을 얻은 것도 이때부터다.


시장은 이름처럼 미로 같은 골목으로 이어지고, 오래된 가게와 최근 들어선 가게가 사이좋게 공존한다. 시장 구경에 빠져 이리저리 무작정 걷다 보면 막다른 길에 이르기도 하고, 왔던 길을 다시 지나기도 한다. 이곳에서 효율적인 동선 따위는 필요 없다. 그저 발길 닿는 대로 돌아보는 게 미로예술시장을 여행하는 방법이다.


골목은 광장이나 큰길로 이어지게 마련.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골목을 따라 여기저기 돌아보다가 중앙광장에 이른다. 시장은 중앙광장에서 4개 동으로 뻗어간다. 각 동은 색깔이 조금씩 다르다. 가동은 오래된 양복점이나 금은방이 눈에 띄고, 다동은 체험 공간이 다양하다. 라동은 SBS-TV 프로그램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출연한 음식점이 모여 있다. 나동은 2019년 발생한 화재로 현재까지 대부분 영업을 못 하는 상태다.

 

▲ 시장은 4개 동으로 나뉘며, 각 동은 색깔이 조금씩 다르다. 


시장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숨은 재미를 찾아보자. 미로예술시장의 마스코트인 고양이와 생쥐 그림이나 조형물도 그중 하나다. 각 동에서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반기는 마스코트와 만난다. 실제로 고양이가 많이 다니던 곳이라 고양이를 마스코트로 삼았다. 이를 증명하듯 지금도 간혹 길고양이가 눈에 띈다. 군데군데 상인들이 고양이를 위해 마련한 먹이와 화장실도 있다.


우연히 들어선 길목에서 독특한 자동판매기를 발견한다. 음료나 과자가 아니라 일회용 카메라와 필름을 파는 자판기다. 이 자판기가 시장과 잘 어울리는 이유는 필름 카메라가 주는 아날로그 감성과 업사이클링이라는 포인트 때문이다. 일회용 카메라지만 세심한 작업을 통해 여러 번 다시 사용한다. 자판기 속 카메라는 디자인과 종류가 다양하고 흑백 카메라도 있다.

 

▲ 시장 곳곳을 필름 카메라에 담아보자. 


자판기에서 카메라 하나를 뽑는다. 필름 감는 레버를 드르륵드르륵 돌려본다. 기성세대에게는 추억을, 젊은 세대에게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소리다. 1970년 건립해 세월의 흔적을 담뿍 머금은 시장은 필름 카메라에 담기 딱 좋은 피사체다. 필름을 다 채운 카메라는 자판기 옆 카페 ‘동경수선’에 맡긴다. 자판기를 운영하는 이곳에 카메라와 케이스를 반납하면 다 쓴 필름으로 만든 상품을 선물로 준다. 필름은 현상과 인화는 물론, 스캔해서 온라인상으로도 볼 수 있다.


원주에는 버려진 공간을 활용한 명소가 또 있다. 중앙선 폐선 구간에 들어선 원주레일파크다. 간현역과 판대역 사이 7.8km를 오가는 코스로, 주변 경관이 수려하다. 간현역에서 풍경열차를 타고 판대역으로 갔다가 레일바이크를 타고 돌아온다. 레일바이크 이용 구간은 대부분 내리막이라 힘들지 않다. 섬강, 소금산 등이 어우러져 산수화 같은 풍경과 테마별로 꾸민 터널을 즐길 수 있다. 새로운 명물로 떠오른 원주소금산출렁다리도 한눈에 잡힌다.


원주를 대표하는 치악산은 주봉인 비로봉(1288m)을 중심으로 향로봉, 남대봉, 매화산 등 높이 1000m가 넘는 여러 고봉이 웅장한 산세를 자랑한다. 치악산 자락을 따라 걷는 치악산둘레길은 현재 1코스 꽃밭머리길(11.2km), 2코스 구룡길(7km), 3코스 수레너미길(14.9km)이 개통했다.

 

1코스에서 국형사, 관음사 등 고찰과 비경을 만난다. 2코스에는 이 일대 주민이 장터나 학교를 오가던 옛길이 있다. 3코스에는 2006년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든 길이 포함된다. 코스마다 스탬프북 보관함과 스탬프인증대를 설치했다.


원주8경 가운데 첫손에 꼽히는 구룡사도 치악산에 들어앉았다.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고찰이다. 당시 아홉 마리 용의 전설과 연관 있다 하여 구룡사(九龍寺)라 했으나, 조선 시대에 절 입구 거북바위의 기운을 담는 뜻에서 구룡사(龜龍寺)라고 이름을 바꿨다. 치악산 품에 안겨 풍치가 좋고, 주변으로 황장목숲길과 구룡소, 세렴폭포 등 볼거리가 있다.

 

<글·사진/김수진(여행작가)>

 

2. 당진의 골목길 여행


당진시 면천면 성상리 일대는 ‘성안마을’로 불린다. 당진면천읍성(충남기념물 91호) 안에 터 잡은 마을이기 때문이다. 순천 낙안읍성(사적 302호)과 청주 상당산성(사적 212호) 성안마을이 우리나라 대표 성안마을로 꼽히는데, 당진면천읍성 성안마을은 분위기가 다르다.

 

▲ 당진면천읍성 남문과 그 왼쪽에 들어앉은 성안마을. 


상당산성 성안마을처럼 번듯한 식당도, 낙안읍성 성안마을처럼 예스러운 초가도 없다. 대신 손때 묻은 집과 소박한 식당, 이발소, 전파상 등이 골목골목을 채운다. 시곗바늘을 반세기 정도 거꾸로 돌린 듯한 풍경은 무뚝뚝한 충청도 사내처럼 속 깊은 정이 느껴진다. 당진면천읍성 성안마을의 매력이 여기에 있다.

 

▲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린 듯한 당진면천읍성 성안마을 풍경. 


당진면천읍성은 1439년(세종 21)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았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에 따르면, 옥천과 진잠, 석성을 포함해 충청도 관내 50여 개 군의 장정이 동원됐다. 이는 서벽에서 발견된 각자(刻字) 성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각자 성돌은 공사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기 위해 축성 연도와 구간, 책임 군현 등을 새긴 돌이다. 옥천현은 ‘己未年 沃川始面 長六十尺 四寸(기미년 옥천현 축성 시작, 면 길이는 60척 4촌)’이라고 새긴 돌을 성벽에 넣었다. 580여 년 전에 실시한 공사 실명제인 셈이다. 당진면천읍성에는 서쪽 치성(雉城) 부근에 각자 성돌 세 개가 있다.


조선 후기까지 면천 지역의 군사와 행정을 담당한 당진면천읍성은 지난 2014년 남문과 남벽 복원을 시작하며 제 모습 찾기에 나섰다. 현재 남서쪽 치성 복원과 객사 터 유적 발굴 조사가 한창이다. 당진면천읍성과 성안마을 복원 사업은 2025년께 마무리될 예정이다.


당진면천읍성 성안마을은 남문을 출발점 삼아 돌아보면 된다. 남문 뒤로 기와집과 초가를 복원해 저잣거리를 재현했다. 아직 온전한 모습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운치 있다. 저잣거리 지나 장청을 만난다. 속오군의 우두머리인 현감이 군무를 보던 곳이다.

 

전면 6칸 ‘ㄷ자형’ 건물이 들어선 이곳에서 이총통이 출토됐다. 세종 때 만든 이총통은 손에 들고 사용하는 가장 큰 총으로, 읍성에서 출토된 건 당진면천읍성이 처음이다. 2018년 복원한 장청은 조선 전기의 무기와 화기, 방어 체계에 관한 전시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객사와 동헌, 내아 같은 관아 건물은 옛 면천초등학교와 면사무소 터에 들어설 예정이다. 면천초등학교는 1919년 3월 10일, 충남 최초로 학생이 주도한 만세 운동이 벌어진 곳이다. 텅 빈 교정을 묵묵히 지키는 당진 면천 은행나무(천연기념물 551호)도 명물. 고려 개국공신 복지겸의 딸 영랑이 중병을 얻은 아버지를 위해 심은 나무로, 수령 1100년에 이른다. 영랑은 아미산 진달래와 안샘물로 두견주를 빚어 병구완에 정성을 들였는데, 이때 사용한 물이 솟은 안샘과 군자정은 옛 면천초등학교 옆 영랑효공원에서 만날 수 있다.


당진면천읍성 성안마을은 감성 여행지로 사랑받는다. 옛 면천우체국을 리모델링한 ‘면천읍성안 그 미술관’과 동네 책방 ‘오래된 미래’, 책방과 나란히 자리한 ‘진달래상회’가 주인공이다. 이들 공간은 우체국, 자전거포, 대폿집같이 오래돼 쓸모를 다한 공간에 감성을 덧입혀 다시 태어났다. 미술관과 책방에는 예쁜 휴게 공간이 마련돼 여행자를 위한 쉼터로도 손색이 없다.


골정지는 동문 터 너머에 있다. 봄이면 벚꽃이 만발하고 여름이면 연꽃 향 그윽한 이곳은 연암 박지원이 면천군수로 있을 때 조성했다. 연못 한가운데 볏짚 올린 정자는 건곤일초정이다. 인근 면천향교 유생들이 이곳을 찾아 시를 읊고 학문을 익혔다고 한다. 골정지를 한 바퀴 도는 산책로도 예쁘다.

 

▲ 골정지를 한 바퀴 도는 산책로. 


당진면천읍성 성안마을을 천천히 돌아본 뒤에는 시원한 콩국수로 출출해진 속을 채워도 좋다. 식당에 따라 부추나 쑥을 갈아 넣고 반죽해 면을 뽑기도 한다. 서리태를 사용한 콩국은 서둘러 찾아온 봄 더위를 날려버리기에 그만이다. 구수한 맛이 일품. 입맛에 따라 소금을 조금 넣어도 괜찮다.


당진면천읍성 성안마을에서 시작된 뉴트로 감성은 자연스레 아미미술관으로 이어진다. 폐교를 미술관으로 꾸민 이곳은 사진 맛집 많은 당진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명소다. 여느 미술관과 달리 다양한 작품을 배경으로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어 매력적이다. 초록 잔디 곱게 깔린 운동장에서 바라보는 미술관도 아름답다. 전시장 내 마스크 착용은 필수.


왜목마을은 해돋이와 해넘이를 한곳에서 보는 매력이 있다. 수평선 너머로 봉긋 솟는 해돋이는 동해의 그것과 또 다른 멋을 풍긴다. 왜가리를 형상화한 조형물 ‘새빛왜목’이 마을의 랜드마크다. 몸통과 날개가 일정 거리를 두고 떨어진 모양이라, 각도를 잘 조절하면 왜가리를 타고 하늘을 나는 듯한 장면이 사진에 담긴다. 몸통과 날개 사이로 떠오르는 해돋이도 멋지다. 높이 30m에 이르는 ‘새빛왜목’은 스테인리스 표면을 각지게 처리해, 보는 위치에 따라 빛과 형상이 달라진다.


당진항만관광공사(옛 삽교호함상공원)는 퇴역 군함을 활용한 해양 문화 체험관이다. 우리 바다를 든든히 지키던 상륙함과 구축함에는 해군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물이 다양하다. 병사들이 사용한 침실과 의무실 등을 미로 찾듯 돌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군대 시절을 떠올리고 싶다면 해군이 사용하는 무게 40kg 군장 짊어지기에 도전해보자. 구축함 상갑판에는 당진 앞바다를 바라보며 여유롭게 커피 한잔하기 좋은 카페도 있다.

 

<글·사진/정철훈(여행작가)>
<콘텐츠 제공=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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