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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권 세태풍자 소설 ‘불 꺼진 무인등대’ 제2부 <3> 의혹의 눈-두 번째 이야기

아리따운 요정은 시퍼런 작둣날 위에서 춤을 췄다

글/김영권(소설가) l 기사입력 2020-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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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 만신은 고통받는 이들 위해 낮은 곳 떠돌며 정성
그때부터 진흙탕에서 향기롭게 핀다는 백련화로 불리고

 

화정은 대통령 비밀 안가 술자리 참석해 총애받았다는 설
“신이 나면 발바닥 간지러워 작둣날 좀 더 날카로워졌으면”

 

운명이란 과연 무엇일까?

백화와 화정 두 여인의 사제 관계는 까마득히 오래 전에 시작되었다.


내림굿을 받기 10여 년 전인 중학생 때부터 화정은 가끔 마니산 기슭의 신당에 올라 백화 무당과 얘기를 나눴다고 전해진다. 여고생이 된 후론 더 자주 찾아가 인생의 번민에 대해 질문하며 해답을 갈구한 듯이 보인다.


어린 소녀가 왜 그랬을까? 그녀의 고백처럼, 집에서 가깝기 때문에 그냥 등산 삼아 올라갔다고 하기엔 어딘지 석연찮은 구석이 느껴진다. 뭔가 절박한 고뇌에 쫓겨 산비탈을 오르는 소녀의 모습은 어디로부터 떠오른 것일까. 그저 과거의 신문이나 야담 잡지가 만들어낸 풍문의 이미지에 불과할 뿐인가?


당시엔 백화 만신도 강화도 지역의 젊고 용한 무당에 지나지 않았다. 손님은 많았지만 대개가 복채나 굿값을 내기 힘든 가난뱅이들이었다. 그녀는 군말 없이 그들의 인생고를 듣고 해결해 주었으며, 혹시 목돈이 들어오기라도 하면 빈궁한 노약자나 병신 불구자들을 직접 찾아가 도왔다. 그녀 자신 또한 시련기였다.


궁벽한 시골 오두막에서 태어난 그녀는 ㄱㄴ자 하나 모른 채 자라다가 열여섯 살 무렵 문득 스스로 신내림을 받고 굿을 벌였다고 전한다. 즉 스승도 신어미도 없이 홀연 무당이 되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무당이라는 자의식도 없이 업을 시작해, 자신의 고통을 통해 남의 고통을 어루만졌는지 모른다.


한 남자를 만나 사랑했으나 비극적인 결말이었다. 육신을 초월해 영혼으로 살라는 신의 뜻인 양 내리는 고난을 견디다 못해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실패…삶도 죽음도 함께 허망스러워져 갔다. 허름한 신당 안에서 식음을 전폐한 뒤 며칠째 울다 지친 그녀는 머리를 산발한 채 맨발로 뛰쳐나가 바닷가 바위 절벽에 엎드려 다시 통곡을 터트렸다.


모든 것을 토해내곤 기진맥진 실신해 있던 그녀는 신을 부르며 겨우 일어섰다. 그러고는 절벽 끝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춤을 추었다. 그 후부터 그녀의 삶은 오로지 신령을 향해 바쳐졌다.


신과 영혼은 고통받는 사람들 속에 있다며 낮은 곳을 떠돌며 정성을 다했다. 그때부터 그녀는 진흙탕에서 가장 향기롭게 핀다는 백련화라고 불리다가 차츰 백화로 널리 회자돼 갔다.

 

▲ 송순단 선생의 진도 씻김굿 장면. <사진출처=무속 칼럼니스트 조성제 블로그> 

 

고급 요정 특급선녀 활동


그 무렵 그녀는 서울에서 무병에 시달리던 화정을 강화도로 불러 내림굿을 열곤 신딸로 받아들였다. 무병도 무병이지만 더 심했던 건 화류병인 매독이었다는 소문도 있다. 살인사건 와중에 대학을 중퇴하고 홀연 잠적해 버렸던 그녀는 당시 은밀히 유명했던 삼청동의 어느 고급 요정에서 특급 선녀로 활동했다는 얘기였다.


당연히 대통령의 비밀 안가 술자리에도 자주 참석하여 총애받았다는 설이 떠돌았다. 늘 숫처녀처럼 순결한 모습과 아리따운 얼굴만으로 그런 자리를 차지한 건 아니고 뭔가 묘이한 것, 즉 그녀 육체 속의 명기가 강철 같은 사내들을 기절하게끔 녹여 버린다는 소리였다.


화정은 스승의 후광에 힘입었기도 했겠지만 굳이 그것에 연연해하진 않고 독자적인 길을 개척해 나갔다.


그녀는 무속에서 사람들의 마음에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가짜 신으로 사기치는 노릇이라며 혐오했다. 대신 꽃향기를 함께 맡으며 정화된 인간의 영혼이 스스로 신령과 만나도록 이끌었다. 사람마다 지니고 있는 재능 가운데 가장 아리따운 것을 신께 바치는 마음으로 꽃피워내어 기뻐하며, 무심 무아하게 훨훨 이웃께 나눠 줄 수 있다면 이 세상이 천국이고 살인범도 선인(善人)으로 변하리라고 얘기했다.


그녀는 텔레비전에도 출연하여 그 아리따운 요정 같은 얼굴로 시퍼런 작둣날 위에 올라 하늘하늘 나비인 양 춤을 추었다. 까딱하면 발꿈치가 썩둑 베일 텐데 두렵지 않냐는 MC의 물음에 화정은 “글쎄요…신이 나면 발바닥이 간지러워지면서 작둣날이 좀더 날카로워졌으면 싶기도 해요”라고 대꾸하곤 다음과 같이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한국인은 세상에서 가장 신이 많은 사람들 중 하나예요. 이미 학자님들이 연구해 놓았으니 굳이 제가 나서서 증언할 필욘 없겠죠? 하지만 가장 정신이 높다느니 밝다느니 가장 피가 붉다느니 맑다느니 가장 어떠니 하는 소린 제발 삼갔으면 좋겠어요. 이 세상 어딘가엔 더 맑고 밝고 붉고 높은 사람들이 숨어 있을 수 있고 실제로도 존재하니까요…설령 한국인이 우주에서 가장 신명 많은 민족이라 하더라도 요즘은 대부분 가짜예요. 현실의 극악한 강제와 압박에 의해 찌그러들고 왜곡되고 변질돼 그저 허풍이나 보여주기 식 쇼로 전락해 버린 꼴이죠 뭐.

 

그러니 무당들도…옛분네들이 생각하지 않던 짓을 고안해낸 거예요. 즉 공포…순수한 공포가 아니라 추악한 공포예요! 깨끗한 공포는 인간 마음을 순화시키기도 하지만 더러운 공포는 오염시키고 훼손시켜 괴물로 만들기도 하니까요…요즘은 무당들은 신의 신부름꾼이 아니라 짐승이나 마귀의 사자(使者)로 변해 버린 것 같아요. 희생 제물로 올려 놓은 돼지 시체의 피를 빨고 그 눈과 코와 혀와 목을 핥으며 짐승처럼 절규하는 건…신성한 제의가 아니라 잠재의식 속의 공포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추악한 계산일 뿐인 것만 같아 무척 씁쓸해요….”

 

만신의 한바탕 굿


제자의 그런 언행에 대해 스승 백화는 꾸중도 칭찬도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지켜볼 뿐이었다. 신딸을 주시하는 신어미의 눈이 아니라, 그냥 어린 말썽꾸러기 딸을 염려하는 어미의 애처로운 눈길이었다고 한다.


그러는 한편 백화 만신은 평소대로 말보다 행동으로 자기 본연의 사명을 정성껏 수행해 나갔다. 그녀의 신명은 제자 화정에 견주어 확실히 한 수 윗길이었다. 새해맞이 국태민안 대굿, 서해안 별신굿 등 자신이 꼭 필요한 자리에서 그녀는 여든 넘은 나이조차 잊은 채 하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바야흐로 승천하려는 선녀마냥 춤을 추었다(그 모습을 보노라면 화정이 텔레비전 속에서 추는 춤이 무척 화려하고 아리땁긴 하되 어쩐지 혼이 빠져 버린 한갓 오락처럼 느껴졌다).


짓푸른 하늘 아래 망망대해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만신의 한바탕 굿은 엄숙했지만 사이비 무당들처럼 사람들의 마음속에 공포감을 조장하긴커녕 그걸 넘어 경외감과 희망을 불러일으켰다.


일반인들과 달리 문득 무당들이 전국에서 들고 일어났다. 그네들은 패를 지어 웅성대며 두 사제를 향해 독설을 날렸다. 이른바 ‘대한승공전통문화예술인연합회’라는 긴 단체 명의로 성명서를 신문 광고란에 내어 매장해 버리려 시도했다.


그 주장을 보면, 우선 백화 만신은 만고 이래의 신성한 전통을 무시한 채 신어머니도 없이 스스로 내림굿을 벌인 해괴스런 짓을 저질렀으므로 기본적인 자격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격도 없는 만신이 추악한 창부에게 엉터리 내림굿을 해줘 일종의 마귀를 탄생시켰다고 질타했다.


또한 무엇보다도, 신령을 우스개로 삼아 타락시키는 텔레비전에 나가 싸가지없이 경거망동하는 화정을 그냥 두고 보는 건 크나큰 대죄이자 전국의 무당을 능멸하는 작태라고 규탄했다.


마지막으로, 아무리 유명한 인사라 하더라도 엄숙하고 공포스런 신령계의 질서를 무너뜨린다면 천벌밖에 없다며 회원 자격 박탈을 선언했다(백화와 화정은 그 단체에 가입한 사실이 없었다).

 

무업 종사자와 친정부 단체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대한승공회라는 이름의 그 단체는 과연 무엇인가? 시대를 좀 거슬러 올라가 볼 필요가 있다.


1961년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군사정부는 자신들의 정당성을 만천하에 떨쳐 보이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구시대 악의 청소를 천명했는데, 그 중에 민심을 현혹 우롱하는 무당에 대한 척결도 포함돼 있었다. 그 당시 모든 국책 사업은 군사작전처럼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전국 각지의 마을을 고유롭게 지켜 주던 신목(神木)이 톱날에 잘려 넘어지고 성황당이 불도저에 의해 허물어졌다. 새마을 건설 운동이라는 혁명 강령 아래 옛마을 나름의 믿음과 꿈과 정(情)은 산산조각나 버렸다. 우리의 영혼과 이어져 있던 신령도 쫓겨나고 말았다. 미신이라는 이름으로…(그리고 그 자리엔 미국의 원호와 입김을 등에 업은 기독교가 들어와 틀고 앉아 우후죽순처럼 번창해 나갔다).


물론 악질 깡패나 고리대금업자처럼 악덕 무당들도 일거에 청소되어야 마땅하지만, 그 무렵 각 지역 향토에 자리잡은 당골네들은 고달픈 인생의 조언자가 돼 주었을 뿐 요즘의 사이비 무당들처럼 돈에만 눈을 밝혀 협잡 사기를 치진 않았다고 알려져 있다. 왜냐하면 그랬다간 자기 자신이 먼저 천벌을 받는다고 믿었으니까.


아무래도 시골보다는 서울 등 대도시의 가짜 빠꼼이 무당들이 고향을 떠나 무정 천지에서 고민하는 뿌리 없는 넋들을 상대로 더 사악한 짓거리를 벌이지 않았을까 싶다.


아무튼 약삭빠른 일부의 무업 종사자들이 모여 살아남기 위해 논의한 결과 친정부적인 단체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이름하여 대한승공전통문화선도예술인연합회…. 거창스럽다 못해 야릇하고 무척 지루한 저런 이름이 대체 어떻게 지어졌을까?


눈치만큼은 백여우 찜쪄 먹을 정도로 빠른 무속업자들은 군사정부의 슬로건이 반공이라는 데 주목했다. 그런데 무속인들이 모여 무턱대고 반공을 외쳤다간 시속 모르는 미치광이들의 짓거리라고 오해 받을 위험이 다분했다. 뭔가 무당과 반공(공산주의 결사 반대!)을 이어줄 만한 단단한 연결고리가 필요했다.

 

어느 술주정뱅이의 말


이 위기의 순간, 오래 전 일본 동경에 유학한 바 있었다는 어느 술주정뱅이의 말이 한몫을 했다고 은밀히 전해진다.

 

그는 막노동으로 고학하며 야간대학을 다니다가 8·15 광복이 되는 바람에 아쉽게 중퇴하고 귀국했는데, 어느 무녀의 기둥서방 노릇을 하며 굿판에 따라다니던 중 문득 잔뜩 취해 “흐흥, 공산주의의 핵심은 유물론이야. 물질이 정신보다 더 먼저라는 얘기지. 즉…자리가 사람을 만들고, 옷이 신사 숙녀를 만들며, 산해진미를 먹으면 몸뿐만 아니라 영혼마저 고귀해지고, 집 주인은 셋방살이하는 사람보다 도도하게 굴 수 있다는 사회법칙이랄까…이를테면 돈이 많은 사람은 저도 모르게 고상스러워지고 귀신까지 제 맘대로 부릴 수 있다는 말씀이야” 하고 지껄였다.


“당연한 노릇인데 뭐 그리 대단한 듯이 개소리 연설을 길게 뇌까리고 있어. 그래서 요점이 뭐랑가?”


옆에 앉은 사내가 눈살을 잔뜩 찌푸리며 물었다.


“허어, 설령 당연하고 자연스런 현상이라 하더라도…부자들은 그런 시시껄렁한 공산주의 사상을 싫어하는 척한단 말씀이야. 자기의 꿈과 정신, 의지력과 피땀으로 맨땅에 천국의 바벨탑을 건설했다고 생각하지. 아마 군사 혁명 정부도 그리 생각하고 있을 거야…

 

음, 일단 한잔 하고 나서 마지막 결론을 내야겠군…크, 좋구먼. 헌데 일반 사람들은 무당들이 상당히 정신적인 존재라고 생각하는데…사실상 요즘 무당들은 일반인보다 현실적으로 약삭빠르고 돈을 좋아하거든. 이걸 살짝 이용하면 엄혹한 군정 현실을 뛰어넘어 나비처럼 우화등선할 수 있단 말야.”


“도대체 뭔데요, 영감? 둥기 아니랄까봐 자꾸 질질 끌고 그러슈, 흥!”


“우선 돈을 좀 갹출해서 군정 공보부 담당관과 언론사 기자들에게 슬쩍 찔러 줘야겠지. 그러고는 한 달쯤 있다가 남산 자락 광장의 이승만 동상 앞이나 북악산 국사당으로 총출동해 열렬히 외쳐대는 거야. 뭐라 외친다구? 바로 이게 포인트야…우리는 북한 괴뢰 공산당을 적극 반대한다! 괴뢰도당은 얼토당토않은 유물론을 선전선동하여 민심을 훼손시키고 있다! 우리 무당들은 누천년 이래 천신으로부터 내려받아 온 신령의 능력으로 가짜 유물론 위에 세워진 북한 괴뢰 공산당을 사상누각처럼 무너뜨릴 것이다!

 

하하하, 즉…우리의 장기인 유심론을 가지고 슬쩍 유물론을 반대하는 척하면서 실은 북한 공산당을 극렬히 혐오하는 듯이 공표하는 거야. 그러면 명분이 딱 서니까 혁명정부에서도 스르르 한눈을 감고 한눈으론 찡긋하며 신호를 보내겠지. 흐흐…어때?”


그리하여 별 상관이 없을 듯한 무당과 북괴 공산당이 마치 철천지원수처럼 최전선에서 대치하는 성싶은 모양새가 된 것이었다. 그들은 주기적으로 남산 기슭에 거창스런 굿판을 차리곤 공산괴뢰도당 퇴치 기원 전국 민속예술인 궐기대회 따위를 열었다.


그들은 이제 미신 병균을 국민들에게 전염시키는 잡된 무당이 아니라 열혈 반공 투사가 된 셈이었다. 아니, 그렇게 되었다기보다 그렇게 되기 위해 계속 군사정권의 눈치를 보며 분발했다고나 할까. 그런 덕분에 무당의 본질을 버린 반풍수로나마 단체의 명맥을 이어 갈 수가 있었다.

 

무녀 본연의 역할


한편 그 술주정뱅이는 반쪼가리 한국 땅이 좁다며 늘 구시렁거리다가 미국으로 훌쩍 건너가선 교포사회 일각의 멘토로 활동했던 모양이었다. 위스키에 취해서….


그 정치적인 무당들은, 20여 년 동안 독재 철권을 휘두르며 반공법을 앞세워 무고한 국민을 빨갱이로 몰아 죽이기도 하고 또한 경제를 반전시켜 한강의 기적을 자랑 삼기도 하던 박정희가 총탄에 맞아 죽고 나자, 마치 그가 못 다 쓴 에너지를 활용하려는 듯 신당에 고이 모시곤 신격화시키려 애썼다.


수구적인 학술단체와 보수언론이 결탁해 힘을 모은 결과 박통은 마침내 일부 국민들 사이에 반인반신 같은 존재로 등극해 광신적인 추앙을 받게 된다. 요즘은 더욱 더 심해져 아예 신으로 옹립되고 있다….


어려운 세월 동안 백화와 화정 사제는 무당업계의 모함을 받으면서도 일체 대응하지 않고, 천지간에 외로운 무당의 본질이 뭔지 추구하며, 그저 시름겨운 일반 사람들 속에서 무녀 본연의 역할을 해 나갔다. 그렇게 전해진다.


신어미와 신딸 사이였건만 둘의 개성이 무척 달라 간혹 일종의 상쟁이 벌어지기도 했으나 어둠 속에서 같은 등대 빛을 향해 걸어갔다. 그건 환경 때문이었을까, 혹은 그들의 성격 때문이었을까? 어쩌면 고독감 때문이었을지도….


<다음 호에는 ‘신령계’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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