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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겨울 음식 여행

이 겨울 예산 어죽 한 그릇…매콤·걸쭉한 맛 ‘별미’

정리/김수정 기자 l 기사입력 2020-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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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먹고사는 일은 인생 최대의 화두 거리다. 그리고 식도락은 인간에게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즐거움을 선사한다. 오늘날의 미디어들은 쉽게 맛을 내는 레시피를 공개하고, 유명 셰프들은 저마다 발군의 요리 솜씨를 뽐내며 소위 ‘쿡방’과 ‘먹방’으로 트렌드를 이끌어나간다. 그래서인지 전국 곳곳의 맛있는 식당을 찾아가는 맛집 열풍은 식을 줄 모른다. 식도락은 인간에게 손꼽히는 즐거움. 텔레비전에서도, 서점가에서도, 전국 곳곳의 맛있는 식당을 소개한다.

 

올해는 동장군이 영 맥을 못 추고 있지만 그래도 겨울은 겨울이다. 입춘이 지났지만 ‘지각한 추위’가 뒤늦게 기승을 부리면서 뜨끈한 음식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때마침 한국관광공사에서는 2월에 가볼 만한 곳으로 ‘이야기가 있는 겨울 음식 여행’을 추천하고 있다. 한겨울 어죽으로 뜨끈한 추억 한 그릇을 선사하는 충남 예산과 뜨끈한 생선 살이 입에서 사르르 녹는 미식 체험을 하려면 경남 거제와 통영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조선팔도 어디나 물고기 사는 곳엔 어죽…동네사람 모여 영양 보충
예당호 일대엔 저마다 비법으로 어죽과 붕어찜 파는 식당 10여 곳

 

남쪽 겨울 바다를 주름잡는 대구와 물메기, 2월까지 미식가들 유혹
부드러운 살 사르르 녹는 대구탕, 맛만 봐도 겨울 향미 입안 가득

 

1. 충남 예산 어죽


본래 어죽이란 음식이 그렇다. 농사일 바쁜 한여름에 하루 짬을 내, 마을 사람들이 개울에 모여 물놀이도 하고 천렵도 좀 하다가, 커다란 솥단지 걸고 잡은 물고기에 대파, 양파, 생강, 마늘, 고추장, 고춧가루, 불린 쌀이랑 국수, 수제비까지 끼니 될 만한 것 몽땅 넣고, 푹푹 끓여서 흐물흐물해진 생선 살에 밥과 국수, 수제비가 들어가 걸쭉해진 국물 한 사발 푸짐하게 나눠 먹는 것. 한겨울에는 얼음 깨고 물고기를 낚아 뜨끈한 국물 한 사발로 동장군을 물리치기도 했다.

 

▲ 예당호 ‘대흥식당’의 어죽과 튀김. 


그러니 조선 팔도 어디나 물고기가 사는 곳이라면 어죽이 있었다. 된장을 푸는지 고추장을 푸는지 맑은 국물을 내는지, 밥만 넣는지 수제비도 넣는지 국수까지 몽땅 넣는지에 따라 강원도식, 전라도식, 충청도식으로 나뉘었지만 동네 사람 모여 맛있고 푸짐하게 영양 보충하는 건 모두 같았다.


충남 예산에서도 그랬다. 1964년 둘레 40km에 이르는 관개용 저수지를 준공하자, 동네 사람들이 농사짓는 틈틈이 모여서 솥단지를 걸고 고기를 잡았다. 붕어, 메기, 가물치, 동자개(빠가사리) 등 잡히는 대로 푹푹 끓이다가, 고춧가루 풀고 갖은 양념에 민물새우 넣어 시원한 국물을 만든다. 불린 쌀에 국수와 수제비까지 넣어 죽을 끓인 뒤, 다진 고추와 들깻가루, 참기름을 넣고 한소끔 더 끓여 먹었다. ‘충남식 어죽’이 탄생한 순간이다.

 

▲ 예산 어죽에는 밥과 국수, 수제비가 들어간다. 


물론 민물고기로 만든 음식은 어죽뿐만 아니다. 제법 큰 붕어나 메기는 무와 시래기 잔뜩 넣어 찜으로, 동자개나 잡어는 칼칼한 매운탕으로, 살이 향긋한 민물새우와 미꾸라지는 튀김으로 먹었다. 동네 사람들끼리 혹은 집에서 별식으로 즐기던 어죽과 매운탕, 튀김은 경제성장과 함께 발전한 외식산업 붐을 타고 사 먹는 음식이 됐다.


지금 예당관광지로 개발된 예당호 일대에는 저마다 비법으로 만든 어죽과 붕어찜, 민물새우튀김 등을 파는 식당 10여 곳이 있다. 여기도 ‘맛집’이 있어서 이름난 식당은 줄을 길게 서야 하니, 식사 시간은 피하는 것이 좋다.


어죽으로 속을 든든하게 채웠다면 소화할 겸 아름다운 예당호를 느릿느릿 걸어보자. 때마침 지난해 국내 최장 길이(402m)를 자랑하는 예당호출렁다리가 완공되고, 5.2km에 이르는 ‘느린호수길’도 개통했다. 산책은 예당호출렁다리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 여기서 느린호수길이 연결되고, 맞은편 언덕으로 주차장이 여럿이라 차를 대기도 편하다. 주말에는 차가 몰려 주차가 만만치 않으니 주의할 것.

 

▲ 둘레 40km에 이르는 예당호. 


예당호출렁다리는 입장료도, 매표소도 없어 그냥 걸으면 된다. 다리 주변에 기념사진 찍기 좋은 조형물이 있고, 다리 중간에는 투명한 바닥에 전망대까지 갖춘 주탑이 있다. 주중에는 느릿느릿 여유롭게, 주말이면 사람 따라 흘러가듯 걷는다. 그렇다고 인파에 치일 정도는 아니니 굳이 주말을 피할 이유는 없다. 사람 따라 흘러가느라 풍경을 제대로 못 봤다면 한 번 더 건너면 된다.


다리가 생각보다 많이 출렁거린다고 걱정할 필요도 없다. 예당호출렁다리는 내진 설계 1등급을 받은 만큼 안전하고 튼튼해, 어른 3150명이 한꺼번에 올라가도 끄떡없으니까. 밤에는 형형색색 조명으로 출렁다리가 찬란하게 빛난다. 그러데이션 기법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무지갯빛 LED 조명이 환상적이라, 데이트나 가족 나들이 코스로 그만이다.

 

▲ 국내 최장 길이(402m)를 자랑하는 예당호출렁다리. 


출렁다리부터 예당호중앙생태공원까지 이어지는 느린호수길에선 훨씬 다채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언덕에 올라 발아래 길다란 출렁다리를 조망하거나, 벤치에 앉아 바다처럼 넓은 예당호 풍광을 즐기거나, 정자에 들러 운치를 느껴도 좋다. 대부분 나무 데크로 이어지고 가파르지 않아, 어린이와 노인도 걷기 쉽다.


‘어죽의 고장’ 예산을 대표하는 사찰은 수덕사다. 근대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경허선사와 만공선사를 배출한 수덕사는 대웅전(국보 49호)을 중심으로 삼층석탑과 부도전, 성보박물관 등 볼거리가 많다.


절 입구에 자리한 수덕사선(禪)미술관은 2010년에 우리나라 최초로 문을 연 불교 전문 미술관이다. 바로 옆 수덕여관은 20세기 한국미술을 전 세계에 알린 고암 이응로 화백이 작품 활동을 한 곳이다. 고암이 1944년 구입한 수덕여관(이응로선생사적지, 충남기념물 103호) 앞에는 바위에 새긴 그의 추상 부조가 있다.


한국고건축박물관도 들러볼 만하다. 강릉객사 문을 원형 그대로 복원한 정문을 지나면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대표 사찰과 탑, 궁궐 모형 100여 점이 있는 제1전시관, 국보급 문화재 축소 모형을 전시한 제2~3전시관이 이어진다.

 

한국고건축박물관 전흥수 관장은 대목장(국가무형문화재 74호) 보유자다. 문화재 보수·복원 전문가들의 노력으로 국내 고건축의 모든 것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박물관이 만들어졌다.


예산 윤봉길 의사 유적(사적 229호)도 꼭 들러봐야 한다. 이곳에는 윤 의사의 영정을 봉안한 충의사, 그의 일생을 살펴볼 수 있는 윤봉길의사기념관, 생가와 중국으로 가기 전까지 농민운동과 독립운동을 한 집 등이 자리 잡았다. 윤 의사가 의거 직전에 김구 선생과 바꿨다는 시계, 마지막 순간에 묶인 사형틀, 거사에 사용한 물통 폭탄과 자살용으로 준비한 도시락 폭탄 등도 볼 수 있다.


이곳저곳 둘러보느라 다리가 아프다면 덕산온천족욕장에서 여행을 마무리하는 건 어떨까. <세종실록지리지>에 등장하는 덕산온천은 일제강점기에 근대식 온천으로 개발됐다. 탄산수소나트륨 온천물에 게르마늄 성분이 포함돼 근육통, 관절염, 신경통 등에 효과가 있다. 최근 새로 단장한 족욕장은 예산군청이 무료로 운영한다. 본격적인 온천욕을 즐기려면 주변의 온천장이나 호텔을 이용해도 좋다.

 

<글·사진/구완회(여행작가)>

 

2. 경남 거제와 통영


담백한 생선 살이 입에서 살살 녹는 ‘뜨끈한 탕’ 한 그릇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거제 대구와 통영 물메기는 한려해상국립공원 일대의 겨울 별미다. 남쪽 겨울 바다를 주름잡는 대구와 물메기는 12월부터 식탁에 올라 이듬해 2월까지 미식가를 유혹한다.


덩치나 펼쳐지는 풍경으로 치면 거제 대구가 형님뻘이다. 대구를 제대로 맛보려면 거제 외포항으로 향한다. 대구잡이 철이 되면 외딴 포구가 온종일 외지인으로 들썩거린다.

 

대구는 산란을 위해 겨울철 냉수 층을 따라 거제 북쪽 진해만까지 찾아든다. 외포항은 한때 전국 대구 출하량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대구의 아지트’였다. 포구에 들어서면 커다란 대구 조형물이 포구의 세월과 위용을 자랑한다.


주말이면 외포항을 찾는 차량으로 진입로가 막힐 정도로 겨울 대구는 인기 높다. 포구 곳곳에 생선을 판매하는 좌판이 늘어섰고, 겨울 볕에 몸을 맡긴 대구가 줄지어 분위기를 돋운다. 이른 오전이면 포구에서 대구 경매가 열리기도 한다. 긴 아래턱, 부리부리한 눈에 70cm를 넘나드는 대구는 3만~4만원 선에 팔린다.


포구 한쪽에 대구로 만든 음식을 내는 식당이 모여 있다. 외포항 식당에서는 대구튀김, 대구찜, 대구탕이 2만5000원에 코스로 나오며, 대구회와 대구전, 대구초밥을 내는 곳도 있다.

 

▲ 코스 요리를 주문하면 매콤한 대구찜도 맛볼 수 있다. 


통통하고 부드러운 살이 사르르 녹는 대구탕(1만5000원) 맛만 봐도 겨울 향미가 입안 가득 전해진다. 생대구와 곤이가 담뿍 들어간 대구탕은 비린 맛이 없고 담백하며 고소하다.


다양한 대구 요리로 배를 채운 뒤 포구를 거닐어보자. 고깃배 너머 대구를 손질하는 아낙네의 손길이 바쁘고, 말린 대구와 대구 알젓, 대구 아가미젓 등을 파는 진열대가 보인다. 포구 옆 외포초등학교를 지나 외포리 골목 산책에 나서면 마당 가득 대구를 말리는 어촌 풍경이 운치 있다.

 

▲ 거제 외포항에서 대구를 말리는 풍경. 

 

외포항에서는 매년 12월 말 거제대구수산물축제도 열린다. 대구 요리는 2월 중순까지 제철이다. 생대구로 만든 음식은 말린 대구로 끓인 탕이나 찜과는 또 다른 품격이 있다.


거제에 ‘입 큰’ 대구가 있다면, 이웃 도시 통영에는 ‘못난’ 물메기가 있다. 체급은 작아도 애주가들 사이에서 물메기가 ‘해장에 한수 위’라는 평가를 받는다. 물메기는 동해안 일대에서 곰치라는 이름으로 친숙하다.


이른 오전에 통영항여객터미널과 가까운 서호시장에 가면 살아 헤엄치는 물메기를 만날 수 있다. 못생겨서 한때 그물에 잡히면 버렸다는 물메기는 최근에 귀한 생선이 됐다.

 

서호시장 좌판의 한 상인은 “요즘 통영에서 물메기는 ‘금메기’로 불린다”고 푸념을 늘어놓는다. 예전에 통영의 겨울 별미 하면 굴과 물메기가 꼽혔는데, 남해안 수온이 올라가면서 작년부터 물메기 어획량이 많이 줄었단다. 어른 팔뚝만 한 물메기가 서호시장에서 4만원 선에 거래된다.


관광객이 편리하게 물메기를 만날 수 있는 곳은 강구안 옆 중앙시장 일대다. 시장 안 횟집과 해물탕집에서는 겨울이면 물메기탕을 낸다. 한 그릇에 1만5000원 선. 예전보다 값이 오르고 양은 줄었지만, 맑은 국물과 어우러진 겨울 물메기의 담백한 맛을 못 잊는 단골들이 식당 문을 두드린다. 팔팔 끓인 무와 어우러진 물메기탕은 살이 연해 후루룩 마시면 숙취 회복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중앙시장 안 횟집과 해물탕집에서는 겨울이면 물메기탕을 낸다. 한 그릇에 1만5000원 선. 

 

물메기탕은 2월을 넘어서며 도다리국에 배턴을 넘기고 식탁과 작별을 고한다. ‘거제 대구, 통영 물메기’라는 공식이 굳어졌지만, 거제에서 물메기탕을 맛보고 통영에서 대구탕을 즐길 수도 있다.


거제 외포항에서 북쪽으로 향하면 푸른 해변 따라 포구 마을이 이어진다. 거가대교 가는 길에 만나는 두모몽돌해변은 호젓한 어촌과 자그마한 몽돌 해변을 간직한 곳이다.

 

거제 남쪽에 여차몽돌해변, 학동흑진주몽돌해변 등 유명한 몽돌 해변이 있지만, 두모몽돌해변은 겨울 바다의 고요한 휴식을 음미하기 좋다. 번잡한 상가 대신 바람과 몽돌 소리가 함께한다. 포구 방파제 너머로 거가대교를 감상할 수 있다.


거제 서북쪽 가조도는 노을 명소로 알려진 곳이다. 가조연륙교 너머 수협효시공원이 2018년 말 문을 열고, 공원 전망대와 카페가 섬 조망과 노을 감상 포인트로 입소문이 났다. 수협효시공원은 가조도에서 수산업협동조합의 모태가 출발한 것을 기념해 설립됐다. 가조도 창호리의 ‘노을이물드는언덕’ 또한 바다와 인근 섬 너머로 해가 지는 모습이 아름답다.


통영에서는 봉평동의 봉수골 골목을 거닐어볼 일이다. 통영 미륵산 봉수대(경남기념물 201호)로 가는 길목에 있는 봉수골은 ‘추상미술의 대가’ 전혁림 화백의 미술관과 문화 사랑방 ‘봄날의책방’을 랜드마크로 카페, 게스트하우스, 베이커리 등 30여 개 아담한 공간이 들어서며 산책 명소로 정착했다. 옛 목욕탕, 찻집도 고스란히 남아 운치를 더한다.


산양읍에서는 겨울 편백 숲길이 아름다운 미래사가 좋다. 부처의 진신사리 3과가 봉안된 미래사는 봉수골에서 용화사를 거쳐 한 시간쯤 걷거나, 통영케이블카로 미륵산 정상에 오른 뒤 내려오는 길에 들를 수 있다.

 

<글·사진/서영진(여행작가)>
<콘텐츠 제공=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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