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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권 세태풍자 소설 ‘불 꺼진 무인등대’ <6> 입

모자·안경·금목걸이로 치장한 개…귀엽지 않고 징그러울 뿐

글/김영권(소설가) l 기사입력 2020-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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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개를 사랑하는 반의 반만큼이나마 이웃을 생각하세요”
“정 그렇게 시끄러우면 다른 조용한 별장으로 이사 가시든지”

 

웬 개 대가리가 뒷좌석에서 불쑥 튀어나오더니 나무라듯 칼칼 짖어
양쪽 머리 땋고 분홍 리본 달고 부인 품에 안겨 늦둥이 딸인 줄…
 
외출 준비를 마친 Q는 작은 가방을 메고 지하방을 나섰다.


계단 위 콘크리트 틈에 작은 풀꽃 한 송이가 피어나 고개를 흔든다. 그는 쭈그려 앉아 손가락 끝으로 살짝 매만져 주곤 위층 베란다를 쳐다보았다. 창문이 활짝 열려 있다. 그가 일어서는 순간 갑자기 개가 대가리를 불쑥 내밀곤 캉캉 짖어댔다.


그는 심호흡을 하며 일단 다시 쭈그린 후 돌조각을 몇 개 주워 든 채 5초쯤 기다리다가 벌떡 도약해 호랑이 포효처럼 으르렁거림과 동시에 돌을 휙 뿌렸다. 고함 소리에 놀란 놈이 돌조각의 타격 통증을 호랑이의 이빨 공격으로 단순 착각해 수십 배 이상 더 고통과 공포를 느낀 나머지 졸도해 버리길 바라면서….


그런데 놈은 그닥 놀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고개를 살짝 돌려 돌멩이마저 피한 다음 마치 권투 선수인 양 반격의 펀치를 컹컹 날렸다.


만약 한 발의 잽이라도 적중해 개놈이 퇴각했다면 그 역시 손을 털고 외출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놈은 하늘과 사람을 번갈아 노려보면서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그는 화단 가에서 붉은 벽돌 하나를 집어들어 놈의 대가릴 향해 내려쳤다. 벽돌은 베란다 철책 모서리를 때려 쾅 하고 울렸다. 개는 약간 주춤했다.

 

“우리 애가 좀 짖었기로서니”

“대체 이게 무슨 짓이에요, 엉? 가택 훼손죄로 지금 신고하겠어요!”


문득 앙칼진 소리를 지르며 여자가 위쪽에 나타났다. 화장을 하던 중이었던지 아직 전체적으로 미완성인 얼굴 가면인데, 특히 입술 루즈가 반쯤만 칠해진 상태라 그 성난 모습이 퍽 그로테스크해 보였다.


“그렇게 하세요. 경찰관이 와서 제대로 판단해 주면 좋겠군요.”


“아니, 뭐가 그리 큰 불만이에요? 우리 얘가 시원한 공기 마시느라 좀 짖었기로서니…여기가 무슨 산중 절간도 아니고 말야!”


여자는 가면 같은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잠시 마당으로 좀 내려오세요. 올려다보고 있으려니 눈이 부셔서 말하기 힘겹군요.”


“무슨 대단한 할 말이 있다는 거예요? 나 지금 시간 없어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한 가지만 얘기하죠…베란다 창문을 열 경우엔 개를 뒤쪽 방에 넣어둔다고 그 입으로 언약했잖아요. 그런데 왜 지키지 않죠? 빨래 널기 위해 잠시 열었다가 깜박했다고 또 변명할 거예요? 그럼 왜 빨리 나와서 닫지 않는 거죠?”


“남자들은 잘 모르겠지만 화장하다가 뛰어나오긴 쉽지 않은 일이에요. 그걸 요구하는 건 아마 전 세계적으루도 남자의 에티켓이 아닐 거예요. 더구나 집중을 요하는 일종의 고난도 예술작업이기 땜에 사실상 우리 얘가 짖어대는 소리조차 잘 들리지 않아요. 사람 사는 세상인데 너무 쩨쩨하게 굴지 말고 남의 사정도 좀 이해해 주면서 지내면 서로 좋잖아요. 안 그래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입니다. 부디 제발 개를 사랑하는 반의 반만큼이나마 이웃을 생각해 주세요. 그러면 천국까지는 아니더라도 지옥엔 빠지지 않을 겁니다. 교회에 다니시니 더 잘 아시겠죠.”


“어머머, 기가 막히는군. 정 그렇게 시끄러우면 다른 조용한 별장으로 이살 가면 될 텐데, 왜 그 어둑한 지옥 같은 방 속에 붙박혀 있는지 모르겠네!…흥, 그럼 댁은 남한테 피해를 전혀 안 주고 산다는 거야 뭐야? 흥, 착각하지 말라구. 댁의 그 지하방에서 밤마다 흘러나오는 음악 소린 내 귀엔 마치 귀신 울음처럼 들린단 말야.”


“정말 생트집 잡는군요. 그윽한 명상음악을 귀신 울음이라니…그리고 아무리 좋은 음악이라도 소리가 크면 독서나 명상을 하는 데 도리어 방해되기에 가능한 아주 작게 해놓는데요.”


“그건 주관적인 판단일 뿐이야. 아무리 작더라도 내 귀엔 귀신의 울부짖음으로 들리니까. 흥, 난 클래식 따윈 싫어! 정신병자들이나 그딴 걸 듣지…때론 나도 뽕짝 같은 걸 크게 틀어놓고 싶지만 참고 있다구.”


“한번 해보시죠. 뽕짝이든 개소리든 재즈든 소음 수준만 아니면 다 들을 만하니까요. 아무리 큰 소리도 멀찍이 떨어진 거리에서는 뱃고동이나 기적 소리처럼 아련스레 들리잖아요. 저도 웬만한 소음은 생활의 소리라고 이해할 테니, 베란다 창문을 열어 놓을 땐 지난번 약속대로 부디 강아지를 뒷방에 넣어 놓으세요. 정말로 깜짝 놀란다니까요!

 

만일 또 새벽잠을 깨우고 명상을 훼방한다면 저도 같은 방식으로 대접하겠습니다. 혹시 우퍼라고 들어 보셨는지…층간 소음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복수용으로 사용하는 음향 기구인데, 일단 한번 설치하면 제 아무리 배짱 좋은 사람도 사흘 안에 항복한다더군요. 하지만 두 손을 싹싹 비비며 애걸복걸하시더래두 저는 최소한 석 달 정도는 애를 먹일 겁니다. 본전은 뽑아야 할 테니까요. 이건 최후통첩이니 인터넷 검색도 한번 해보시구 심사숙고하세요.”


여자는 “흥!” 하고 콧방귀를 뀌곤 창문을 세차게 닫아 버렸다.

 

▲ 한 남성이 층간소음에 항의하는 아랫집을 찾아가 출입문과 주차된 차량을 부순 사건이 2017년 3월 발생했다. <뉴시스> 

 

개를 기르는 사람들


Q는 다시 쭈그려 앉아 콘크리트 틈새에 피어난 하얀 작은 꽃송이를 검지손가락 끝으로 살살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정말 삭막한 세상이지? 그렇지만 하늘을 쳐다볼 순 있으니 좋은 세상을 꿈꾸며 어떻게든 살아야지. 그렇지? 그럼 나갔다 올게.”


그는 일어서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골목길을 걸어 내려가자 여기저기서 간헐적으로 개소리가 들려왔다. 방구석에서 들을 때와 달리 전혀 위협적이지 않고 상쾌하기까지 하다. 사람과 함께 길을 지나가는 귀여운 녀석은 살짝 쓰다듬어 주고 싶다. 하지만…콘크리트 속의 어느 집에서는 개가 계속 짖어대고 누군지 악에 받쳐 바락바락 상스런 욕지거릴 내지르기도 했다.


“쌍놈 개새끼야! 네 놈과 네 주인년의 대가리를 싹둑 잘라 몸뚱일 서로 바꿔 붙여 놓고 싶구나!…혹시 너희 년놈들은 서로 붙어먹은 게 아냐, 응?…야, 제발 그만 지랄하라니까! 아, 정말 저 개년놈들을 같이 가마솥에 산 채로 집어넣고  푹 삶아 악마에게 던져주고 싶군!…만일 그런 신세가 되기 싫거든…잠든 네 주인의 귀에 대고 컹컹 발악하거나 물어뜯어라!”


Q는 증오 어린 그 육두문자에 진저리를 쳤지만, 지하방에서 겪는 고통을 떠올렸는지 문득 정색을 하곤 꽤 크게 소리 질렀다.


“저 개새끼, 정말 너무하는군!…푹 삶아 고아서 깻잎 듬뿍 넣고 고춧가루 후춧가루 뿌려서…고통당하는 이웃 사람들에 한 그릇씩 드릴까 보다!….”


그는 인상을 잔뜩 찡그린 채 발길을 옮겼다.


개를 기르는 사람들은 모르는 게 있다. 자기 애완견이 짖어댈 때 타인을 사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사람에겐 육안과 심안이 있듯 몸의 귀와 마음 귀도 있다. 잠들 때, 독서할 때, 요리할 때, 섹스할 때, 명상할 때, 집안 청소할 때, 개소리의 데시빌은 똑같겠지만 사람마다 각각 느끼는 강도는 전혀 다르다. 꼭 개소리뿐만 아니라 재봉틀 소리, 다듬이 방망이 소리, 새소리, 쥐새끼 소리, 노랫소리, 심지어 죽어가는 자의 단말마조차 듣는 사람의 형편에 따라 희비애락의 수많은 쌍곡선을 그리는 것이다.

 

아마 소음의 장본인은 그 사실을 모르는 게 아니라, 자기애와 이기심 탓에 짐짓 모르는 척하지 않을까? 그런 사람일수록 입장이 바뀌어 피해자가 되면 훨씬 더 앙칼지게 따진다.


한국 환경공단 층간소음 이웃사이 센터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소음 분쟁은 주관과 객관의 경계가 무척 모호하고 꽤 까다로워 법률적이든 심정적이든 조정 해결이 아주 어렵다고 한다.

 

갈등이 심해지면, 아랫집은 윗집이 일부러 그런다고 생각하며, 윗집은 아랫집이 과민반응한다고 서로 의심스러워한단다. 층간 갈등은 점점 격화된다. 윗집에서 나름 조심을 해도 아랫집에서는 수시로 깜짝깜짝 놀란다. 일단 한번 소음을 느끼면 점점 예민해지기 때문이다.

 

어떤 특정한 소음에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하면 작은 소리마저 크게 증폭되어 고통을 준다. 그리하여 층간 분쟁이 발생해…폭행을 넘어 살인 사건으로까지 번져 오르는 것이다. 아, 색즉시공 공즉시색…법이 꼭 좋은 건 아니지만, 이런 경우는 법률 자체가 미비해 애꿎은 국민이 살인자와 피살자로 동시 피해를 보는 꼴이다.


치밀한 사전 계획으로 저지른 살해와 달리 감정이 격해져 우발적으로 벌어지는 참사인지라 선악을 구별하기 어렵고 그래서 더욱 안타까우며 허무한 것이다. 결국은 동방예의지국 따위 거짓말은 버리고, 이해타산을 엄밀히 따져 사람 대 사람으로 쌍방의 이기심과 감정을 존중하고 서로 조심해야만…그게 즉 귀한 목숨을 졸지에 박탈당하지 않는 비결인 셈이다.

 

▲ ‘층간소음 공감 엑스포’ 모습. <뉴시스> 

 

콘크리트 범벅, 도시의 정글


좁은 골목을 지나 이면도로로 접어들자 차량이 갑작스레 많아져 발길을 막는다. 허망스레 죽지 않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린 채 곡예 걸음을 하는데도 불현듯 경적이 울려 심장을 덜컥 내려 앉힌다. 아침에 방안에서 듣던 개소리와 별 다름없다. 배달꾼 오토바이는 요리조리 미꾸라지처럼 틈새를 빠져 나가며 소음과 매연을 한껏 토해 놓는다.


Q는 욕지기를 참으며 손수건으로 입을 막은 채 일종의 정글 같은 그 아수라장을 한 발짝 한 발짝 겨우 지나간다. 아프리카의 밀림이 아니라 콘크리트로 범벅된 도시의 정글이다. 검푸른 야생 밀림은 죽은 사체에도 생명을 불어넣지만, 회색 콘크리트 정글 속에서는 죽기 전에 생명이 박제당한다.


승용차는 물론 문명의 이기이긴 하되, 좁은 땅덩이에 너무 많은 수가 빽빽히 들어차 꿈틀거리는 모습은 흡사 철갑충이나 개미 무리 혹은 화장실 속의 구더기떼처럼 느껴져 숨막힐 지경이다. 아니, 사람을 먹는다는 쇳덩이 귀신 불가사리랄까. 그래도 승용차 유리창 안에 앉은 사람들은 인간류임을 자부하듯 느긋한 표정이다.


겨우 좁은 이면도로를 벗어나 큰길 신호등 앞에 선다. 색색가지 철갑충들이 씽씽 내달린다. 경적과 매연을 마구 내뿜으며…사람이 부리는 문명의 이기가 아니라 그저 모두 매서운 쇳덩이들 같다. 살의를 숨긴 세련화된 삶의 무기….


푸른 등이 켜지자 철갑충들이 일시에 멈춘다. 많은 사람이 탄 시내버스나 대형 트럭은 하얀 정지선을 잘 지키는 데 비해 승용차는 들쭉날쭉 늘어선 채 곧장 달려가지 못해 씨근벌떡 오두방정을 떨어댄다. 개중엔 횡단보도 통행선 한가운데 떡 버텨 선 채 일부러 거세게 부르릉거리며 매연을 한껏 뿜어내는 놈도 있다.


“천국의 복을 받으시오. 그런데 하늘이 복을 내려주려 해도 당신 스스로 가로막고 있으니 어쩔 도리 없겠군.”


Q가 열린 창을 향해 말했다.


운전석 사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뭐라고 말하려는 순간 웬 개 대가리가 뒷좌석에서 불쑥 튀어나오더니 나무라듯 칼칼 짖어댔다. 맨 처음에 그는 그게 개인 줄 몰랐다. 양쪽 머리를 땋아 분홍 리본을 다는 등 예쁘게 치장한 채 개는 어떤 부인의 품에 안겨 있었기에 늦둥이 딸인 줄 짐작했다.

 

개는 고급스런 모자를 쓰고 보랏빛 안경을 꼈으며 하얀 목에 에메랄드 박힌 금목걸이가 반짝이고 옷까지 단정히 차려입은 모습인지라 혼동스러웠다. 부인 또한 실크 햇과 진청색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허연 얼굴에 값진 보석을 번쩍이고 있었으므로 둘이 퍽 닮아 보였다.


사실을 알고 보니 예쁘지도 귀엽지도 않았으며, 개 같지도 사람 같지도 않고 다만 징그러울 뿐이었다. 그런 해괴한 생물이 탄 고급 승용차는 아직 신호등이 바뀌지 않았는데도 앞에 틈이 보이자 곧 휑하니 달려가 버렸다. 눈에 보이지 않는 독한 매연을 잔뜩 흩뿌려 놓으며….


길을 건넌 Q는 동네 파출소 지구대 앞을 지나 천천히 걸어갔다. 맞은쪽에서 다가오던 여순경이 눈인사를 던졌다. 엉겁결에 마주 웃어준 Q는 그녀가 “요즘은 좀 조용한가요?”라고 하는 말을 듣고야 달포쯤 전에 층간소음 신고를 받고 출동해 왔던 경찰관임을 깨달았다.


“그저 그래요” 하고 의례적으로 대꾸하곤 그냥 지나치려던 그는 문득 멈춰섰다.


“개가 자랄수록 오히려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아요. 개 주인은 인권보다는 견권을 더 중시하는 듯싶고…경찰이 와도 별로 관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그러는지 어쩐지….”


“사실 저희로서도 무척 속상해요. 주민이 피해를 당하는 걸 보면서도 마땅한 법률적 규정이 없다 보니 주의사항만 전달하고 돌아올 수밖에 없으니까요.”


“구청에 호소해도 별 도리가 없다더라구요.”


“아마 그럴 거예요.”


여경은 살포시 한숨을 내쉬었다.


“만일 제가 깡패라면 좀더 효과적으로 위협을 가할 수도 있을 텐데….”


“그러면 안 되죠. 다만, 뭐랄까…음, 언쟁이 격화되어 구체적인 피해 상황이 발생한다면 저희가 좀더 직접적으로 개입할 순 있겠지요.”


“즉, 제가 개한테 물리는 식으로…?”


“글쎄요,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겠죠.”


“네? 그럼 내가 개를 무는 방법?”


“개보다는 사람끼리 당사자가 되는 게 좋아요. 다만, 피해를 주든 입든 가능한 한 최소한으로….”


여순경은 보일 듯 말 듯 모호한 미소만 남기곤 스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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