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김영권의 장편소설 ‘몽키 하우스’ 제3부 <11> 풀이슬 묘비명

음주와 의무적 섹스…양공주를 야금야금 망가뜨렸다

글/김영권(소설가) l 기사입력 2019-12-06

본문듣기

가 -가 +

남녀노소 학살하고 소녀 성폭행…‘아름다운 베일을 쓴 악마’
‘왜 도와주겠다고 와서는 헐벗은 여자와 이 강산을 괴롭히나’


방과 복도 사이 좁은 공간에 한 여자가 구겨져 누워 몸부림치고
창녀 몇십 명 죽는 것보다 성병 근절 중요…페니실린 마구 투약

 

미군의 화력은 북한으로 진군한 시기에 기염을 토하듯 작열했다. 1950년 가을 무렵부터 미군 전투기는 푸른 하늘을 종횡무진 날며 무차별 융단폭격을 퍼부었다. 평양, 은률, 송화, 사리원, 남포, 안악, 원산, 해주 등 북한의 전 지역이 초토화되었다. 산업시설과 집이 대부분 파괴당하고 순수 양민만 100만 명쯤 목숨을 잃거나 중상을 당했다.


특히 황해도 신천에서 자행된 양민 학살사건은 전 세계인의 주목과 지탄을 받았다. 미군은 그곳을 점령한 후,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마구 학살하고 어린 소녀들까지 성폭행해 국제사회로부터 ‘아름다운 베일을 쓴 악마’라는 욕을 들었다.


1950년 10월 중순부터 12월 초순까지 약 50일 동안 그곳을 장악한 미군은 당시 신천군 전체 인구 15만여 명 중 3분의 1에 가까운 4만여 명을 살해하고 부녀자들을 마구잡이로 강간했다.

 

특히나 원암리 화약창고에 모두 500여 명의 어머니와 어린이들을 가둬둔 채 불로 태워 죽인 끔찍스런 사건은 북한 사람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의 머릿속에 자유와 평화를 외쳐대는 미국의 악마성을 각인시켜 주었다.


(미국의 요청에 따라 1968년부터 월남전쟁에 참전한 한국군은 베트콩을 섬멸한다는 명목 아래 수많은 양민들의 집을 불태우고 무차별 학살과 처녀·소녀 강간을 저질렀다고 하는데, 설마 미군으로부터 배운 짓은 아닐 것이다. 따이한은 스스로 참회하고 사과해야 하며, 또한 미국이 우리에게 무엇인지 그 실상을 똑바로 보아야 하리라–지은이 주)


한국전쟁 동안 남한은 약 200만 명, 북한은 300여만 명이 죽거나 중상을 입어 사경을 헤매었다. 인해전술로 북한을 도운 중국은 100만여 명이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되었다. 세계 21개국에서 남한을 도우러 온 유엔군은 15만여 명이 희생됐는데 그 가운데 미군은 약 4만 명이 이국 땅에서 숨졌다.

 

행방불명자와 반죽음 상태의 중상자를 포함하면 6·25 전쟁에 의해 희생된 인명은 총 1000만 명에 달할 터였다. 지구 한 모퉁이의 가장 작은 나라에서 가장 끔찍한 동족 싸움이 벌어져 세계 전쟁사에 유례가 없는 참혹한 살육이 자행된 것이었다.


물론 전방에서 혈전을 벌인 군인들의 피해도 컸지만 더 참혹한 죽음과 고통은 민간인들이 당했다. 남한은 전체 사상자의 50%가, 북한 쪽은 약 70%가 일반 민간인이었다. 북한에서 민간인들의 피해가 그토록 막심했던 건 미군의 무차별 폭격 때문이었다. 북한 전역에 투하된 포탄의 수는 1평방 킬로미터당 30여 개였다.

 

뭇 생명이 살아 숨쉬는 월남 땅에서와 같이 미군은 마치 남아도는 재래식 무기를 바겐세일하듯 한반도 남북 금수강산에도 마구 퍼부어대 폐허로 만들어 버렸다.

 

▲ 이만희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7인의 여포로’. 당시 검찰은 반공법 위반 혐의로 이 감독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는데 그 논지로 ‘양공주 참상을 과장했다’ 등의 이유를 내세웠다.    

 

달러 몇 장으로 춘향이 희롱


“아, 왜 그래야만 했을까? 천공에서 내려다보면 작은 지구라지만… 미국과 조선 땅은 아득한 딴 세상인데 어느 전생에 무슨 악연이 있길래 서로 이런 추악한 꼴을… 아! 제발, 제발 그만둬… 혹시… 뇌염모기 같은 빨갱이를 때려잡는다는 위대한 터미네이터의 사명감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것보다는 한국 사람 자체를 모기나 벼룩처럼 취급한 게 아닐까 몰라….”


청운은 깜박 선잠에 빠진 상태에서 비몽사몽간에 중얼거렸다. 무슨 슬픈 꿈을 꾸는지 눈시울로 눈물 한 방울이 돋아 햇빛에 반짝이다가 뺨을 굴러 내렸다. 그는 가위 눌린 듯 몸을 떨며 헐떡거렸다.


“제발 그러지 마… 아무리 양갈보라지만 그래도 너희들의 욕망과 고뇌를 위안해 주지 않았더냐? 그런데도 여자를 저렇게 엎드려 놓고 군견인 셰퍼드의 색시로 삼으려 하다니! 그걸 사진 찍다니… 제발 그만둬!”


청운은 악몽 속에서 소리치며 손가락으로 잔디를 쥐어뜯었다. 그의 얼굴은 점점 악마처럼 변해 갔다.


“정말 그런다면… 한국 사람들은… 약하고 비굴해서 히히 웃고 있지만… 마음속으론 당신들 자체를 짐승보다 저급한 양키 놈으로 본다는 걸 알아야 해. 알간? 흐흐… 성욕은 모든 생물의 본능이라지만… 꼭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죽이고 정신과 영혼을 타락시켜야만 육욕의 맛이 나는가?”


청운은 눈썹을 잔뜩 찌푸린 채 자신의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어댔다. 곧 붉은 핏방울이 돋아나 입귀로 흘러 내렸다. 피칠갑이 된 입술 사이로 신음소리 같은 독백이 새어나왔다.


“너희들은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이 땅에 들어와 눌러앉아서는, 변사또란 놈보다 더 파렴치한 짓을 저지르고 있어. 너희들이 달러 몇 장으로 희롱하며 데리고 노는 춘향이는 기생도 양공주도 아닌 진짜 공주란 말야. 비록 운이 나빠서 양갈보 신세가 되긴 했지만… 이 땅 한 할머니의 귀한 딸이자 한강·금강 천지연을 다스리는 우리의 젖줄이며 생명꽃이야. 그런데도 너희들은 변사또 놈처럼 한국 아가씨들을 짐승처럼 농락하고 더럽혀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어… 한번쯤 바꿔서 생각해 봐. 만약 우리가 너희들의 아녀자를 유린하고 생명의 터전을 파괴한다면….”


청운은 비몽사몽 간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고 따위 걱정 하지 말고 코리아 년놈들이나 제대로 하라구? 흐흣, 하긴 언젠가 미국 대사님께서… 한국인은 들쥐떼처럼 줏대도 없이 유행 따라 이리 몰렸다 저리 몰렸다 오락가락 하는 종족이라고 비꼬긴 했었는데… 그 누구도 제대로 대꾸할 말이 없었지 뭐. 흐흐…

 

개 중에서 최강견인 도사견이나 핏불테리어를 호랑이 앞에 데려다 놓으며 지레 꼬릴 말아 넣고 오줌을 질질 싸며 뒷걸음친다는데… 진돗개나 풍산개는 물러서지 않고 으르렁대며 짖어댄다더군. 그놈들이라고 왜 두렵지 않았겠어. 처음엔 뒷다리가 파르르 떨린대. 하지만 차츰 더 거세게, 호랑이가 아가리를 쩍 벌리고 포효해도 그 대담스레 눈을 쳐다보며 덤빈다는 거야. 어찌 그럴 수 있을까? 들쥐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쇼라고 할지 모르지만, 난 이렇게 생각해. 아무리 작은 미물도 일단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하면 그럴 수 있다고…

 

악마산에서 지옥훈련을 받았던 애들은 아마 이해했을 테지. 이미 모두 죽어 버렸지만… 좀 어폐가 있긴 한데… 옛날 선비 분들도 진돗개 같지 않았을까 싶어. 지엄한 왕 앞에서 바른 소리를 하고, 중국이나 일본의 압제 아래 독립운동을 하다 잡혀 만신창이가 되는 고문을 당하면서도 고문자를 향해 핏물 어린 얼굴을 쳐들 수 있었던 건… 그런 살신(殺身)의 정신을 들쥐들은 알 리가 없겠지 뭐.

 

진돗개는 요즘도 강자에겐 강하고 약자에겐 너그럽건만, 사람들은 오히려 강자 앞에 굽신거리고 약자에겐 냉혹한 세상이야….”

 

▲ 어느 일요일, 빈털터리 청년 허욱(신성일 분)은 사랑하는 지연(전지연 분)을 만나러 간다. 가정을 꾸릴 여유가 없는 허욱은 자신의 아이를 가진 지연의 수술비를 구하러 친구들을 만나지만 거절당하고…. 사진은 이만희 감독의 영화 ‘휴일’ 한 장면.    

 

헐벗은 여자와 이 강산 괴롭혀


청운은 꿈속에서 또 다른 어떤 악몽이라도 꾸는 듯 심란스런 표정이었다.


“나도 그렇지만… 선감도 수용소나 악마산 북파공작원 훈련소엔 가난한 아이들이 많았어. 반강제적으로 고향에서 쫒겨나거나 아예 고향을 잃어버린 애도 있었지.

 

화성군 매향리가 고향이라던 녀석의 얘기가 떠오르는군… 매화 향기 향긋하던 마을에 미군이 들어온 후부터 포연 자욱한 불모지로 변해 버렸댔어. 매향리 바로 앞의 경치도 무척 아름다운 농섬이 미공군 전용 훈련장으로 지정된 후부터 매일 비행기가 날아다니며 폭격을 퍼부었대.

 

그러더니 얼마 후엔 매향리에도 육상 폭격장이 들어섰다더군. 처음엔 농섬에서 작게 시작했지만 차츰 매향리, 이화리, 석천리 등으로 확대된 거지.


원래 다 그런 거잖아. 천연의 자연이 파괴되고, 오폭이나 불발탄 폭발로 인해 많은 주민들이 하루아침에 사망하고 중상을 입는 사고가 점점 자주 발생했다더군. 연일 계속되는 폭격의 소음 때문에 마을 사람들의 심장은 늘 병적으로 불규칙하게 벌떡벌떡 뛰었대. 아마 직접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그 고통을 모르겠지.

 

가난했지만 나름대로 자연에 순응하며 건강하게 살던 주민들은 폭격 소음에 질려 노이로제나 공황장애에 시달렸대. 왠지 그 무렵부터 뇌졸중과 위암으로 신음하는 병자가 늘어났고, 옛날부터 다산 마을이라 불리던 그 지역에선 여자들이 임신을 잘 못할뿐더러 하더라도 유산되는 경우가 많았다지.

 

사람뿐만 아니라 소도 비쩍 말라 가다가 괴상스런 기형 송아지를 낳곤 죽고, 봉황 같던 닭은 깃털이 빠지며 알을 낳지 못했대. 그리고 아버지는 폭격기 소음으로 인해 참혹했던 6·25 전쟁의 기억에 벌벌 떨다가 정신이상자가 된 나머지 농약을 마시고 자살했다는 거야.


그래서 녀석은 고향 땅을 징그럽게 여기며 떠나왔대. 하지만 지옥훈련을 받다가 절벽에 떨어져 죽어갈 때… 그 녀석은 고향이 몹시 그립다고 하더군. 미군이 들어와 포탄으로 오염시키기 전… 매향리 앞 갯벌에서 게며 세발낙지며 백합조개를 잡으며 놀던 시절… 이젠 검붉게 변해 죽어 버렸을 그 추억 어린 바다를… 녀석은 그리워하며 숨져 갔었지…

 

아, 왜 이 땅에선 그런 일이 계속 벌어져야 할까? 중국, 일본, 몽골, 러시아… 등등이 이 자그마한 땅을 자기네 개 놀이터인 양 유린했었지. 매향리나 농섬의 포연은 하나의 상징일 뿐… 전국 각지의 금수강산이 미군부대의 무책임한 오염 때문에 신음하고 있다는데, 언젠가 미군이 떠난 후엔 또 어느 외국 부대가 들어와 어떤 짓을 할지…


아, 미리 좀 물어 봤으면… 대체 너희들은 왜 도와주겠다고 와서 헐벗은 여자와 이 강산을 괴롭히고 파괴하는지… 물론 한창 좋은 나이에 머나먼 타국 땅에 와서 목숨 걸고 고생하는 건 알아. 하지만 지금은 전쟁 중인 상태는 아닌데 너무 과민반응하는 것 같아.

 

혹시… 전쟁도 아니고 평화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를 즐기는 건 아닌지 모르겠군. 원래 놀기엔 요런 미묘한 상태가 딱 좋거든. 흐흐흣… 독일이나 일본에 주둔중인 미군은 멋대로 그런 짓 못하잖아?… 여기선 꼴리는 대로 해도 한국군이나 경찰이 아예 터치를 못하니까 일종의 천국이지. 헤헤… 세상에서도 가장 야리꾸리하고… 불공정한 주둔군 지위협정인가 뭔가를 내세워… 서부영화의 보안관인 척하면서 사실은 갱 노릇을 하고 있잖아… 야심한 밤에 마리화나에 취해 섹스를 하다가 발광한 나머지 여자를 찔러 죽이든, 백주 대낮에 괜히 기분이 나빠 한국 남자를 때려죽이든, 일단 미국으로 슬슬 떠나 버리면 만사 땡이지, 헤헤…


미군 사령관이 한국 대통령에게 쌍을 찌푸리거나 때로 호령할 수 있는 것도 전시작전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이거야말로 한미혈맹의 허구가 아닌가 싶어. 오히려 섹스 매춘 동맹이라고 하는 게 더 진실하지 않을까?… 너희들의 아름다운 나라 미국에도 선량하고 진실한 사람들이 많고 또 군인들 중에도 참다운 기사도를 지닌 청춘이 있겠지만… 검은 악이 너무 강해 맑은 눈물 방울은 묻혀 버리고 잘 보이지도 않지. 아, 왜 이런 슬픈 악몽 속에 헤매어야만 할까?…


아, 미국인은 정의롭고 선량해 뵈는 가면을 쓴 채 너무 악랄한 짓을 마치 장난치듯 저지르는 것 같아. 고향 땅에서 평화롭게 살던 인디언 원주민을 총칼로 몰아내고 광대한 땅을 차지해 마천루를 세웠다지. 자연을 정복하고 인간을 노예로 부려먹었어. 강자의 특권이라며…

 

하지만 우리 좁은 땅을 가지고 장난치려고는 하지 마. 제발… 핵폭탄 하나 떨어지면 몰살해 버리고 말 좁쌀만한 땅이야… 요즘 한국인은 세상 유례 없을 만큼 야비하고 이기적인 종족이 되어 버렸지만… 원래 본심은 그렇지 않았어.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는 속담이 있지. 장난을 치더라도 적당히 쳤으면 좋겠어. 언젠가 한국인들의 속마음이 깨어나 진실을 보게 될 땐… 들쥐 떼가 아니라, 독수리와 사자를 향해 목숨 걸고 덤비는 진돗개가 될 수도 있거든… 그러니 대국이라고 해서 소국의 생명을 갖고 놀아서는 안 된다는 얘기야… 그건 아마 신도 싫어할 테니까….”


비몽사몽 간에 중얼대던 청운은 어떤 거대한 악마에게 억눌리는 듯 몸부림을 치다가 겨우 잠에서 깨어났다. 그의 이마엔 땀이 송알송알 맺혔다가 굴러 떨어졌다.

 

풀이슬 묘비명


어느덧 무덤가엔 어스름이 내리고 있었다.


청운은 허리가 구부러진 할미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가 천천히 일어나 지게를 지곤 산길을 걸어 내렸다.


몽키하우스 입구에 다다랐을 즈음 건물 안쪽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서둘러 다가갈수록 비명과 신음은 더 생생해졌다. 청운은 지게를 벗어 놓곤 급히 계단을 뛰어올랐다. 2층 구석방 쪽에 여자들이 잔뜩 몰려서 있었다.


“페니실린 쇼크인가 봐. 아, 어쩌면 좋아!”


청운은 여자들의 어깨 사이로 상황을 바라보았다. 방과 복도 사이의 좁은 공간에 한 여자가 구겨져 누워 몸부림치고 있었다. 맥없이, 마치 죽어 가는 나비처럼… 하얀 야윈 팔을 날개처럼 흔들며… 손등이며 팔목엔 불그스름한 반점이 여기저기 돋아나 있었다.

 

비명소리를 내지르는 건 둘러선 여자들이고, 쓰러진 그녀는 입가에 거품을 문 채 파르르 떨며 죽어가는 짐승처럼 숨을 할딱거릴 뿐이었다. 머리카락이 마구 흐트러져 얼굴의 반을 가리고 있는 그녀를 알아본 순간 청운은 깜짝 놀랐다. 평소 조용히 애잔한 미소를 지으며 살아가던 정인이었다.


어린 소녀 때 고아 신세가 돼 의붓오빠 놈들에게 성폭행을 당한 후 깡패들에게 끌려 다니며 적색지대를 떠돈 다음 양공주 신세가 돼 미군 장교의 아이까지 낳았다가 버림받곤 약간 정신이 이상해져 버린 애달픈 삶…

 

청운은 급히 사람들을 헤치고 달려가 정인을 껴안았다. 하지만 그녀는 창백한 이마에 잘디잔 땀방울이 돋고 눈알을 허옇게 흡뜬 채 온몸을 부들부들 떨다가 곧 숨지고 말았다.


“애구머니나! 아까까지만 해도 멀쩡히 살아서 나하구 얘길 나눴었는데 저런 꼴로 시체가 되어 버리다니…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


“그러게 말야… 언니야, 창살 밖 하늘이 너무 푸르네, 하고 생긋 웃던 년이….”


“아, 우리가 인간인지 짐승인지 정말 의심스러워져.”


여자들이 질린 목소리로 한 마디씩 했다.

 

페니실린 과다 투약


양공주, 즉 미군 위안부들이 몽키하우스를 두려워하는 건 갇힌 상태의 갑갑함이나 장사(매춘)를 못해 돈을 못 벌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수용소 생활은 물론 심신의 자유를 빼앗기는 등 매우 열악했지만, 일단 성병을 치료할 기회 또는 휴식과 재활의 시기로 활용할 가능성은 있었다. 아무리 젊은 여자들이라 해도 매일같이 이어지는 음주와 의무적인 섹스는 심신을 야금야금 망가뜨렸던 것이다.


하지만 몽키하우스에 갇힌 여자들이 겉으론 태연스런 척하면서도 하루하루 속으로 공포심에 질려 살아가는 건 바로 눈앞에 보이는 어이없는 돌연사 때문이었다. 아무리 막장에 몰린 여자들일지언정 그런 죽음은 싫었으리라.


성병에 특효약이라는 페니실린을 보균자 여성에게 투약하는 건 자비로운 의료행위일 수 있었다. 그런데 미군사령부는 자국에서 공수해 온 페니실린을 한국인의 체질에 맞춰 주사하지 않고 미국인의 기준에 따라 단위를 높여 과다투약토록 지시했다.

 

더군다나 진료실에서는 페니실린 알레르기에 대한 개인별 체크도 하지 않았다. 참으로 무지막지한 그런 방침은 꾸준히 준수되었다. 계속되는 쇼크사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왜 그랬을까? 일단 주사를 맞고 나면 가장 체질이 강하고 깡다구 있는 부류의 여자들도 으슬으슬 한기를 느낀다며 호소했건만 아무런 조치도 없었던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혹시 미군은 한국 여성을 인간이 아닌 원숭이나 특수한 실험 대상인 짐승 종류로 생각했던 건 아닌지 궁금해진다. 혹은 위대한 미군을 상대하는 인형들이니만큼 모든 것을 미군과 미국에 맞춰 감당해야만 한다고 판단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자유와 진리의 수호자인 미국이 그럴 리가 있겠는가. 이상을 내세우면서도 가장 현실적인 그들은, 자국 군인을 우선 페스트보다 흉한 매독과 임질균으로부터 보호하는 게 급선무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야만 전투력을 강건하게 유지해 인류의 공동 적인 빨갱이 공산주의를 말살시킬 수가 있다면서….


그래서 한국 창녀 몇십 명쯤 죽는 것보다 성병 근절이 중요하다는 방침 아래 강력한 페니실린을 마구 투약했는지도 몰랐다. 빨갱이와 매독균의 초토화 박멸… 그리고 양공주들로 하여금 미리 잔뜩 겁을 먹게 해 성병을 사전에 조심하고 경계토록 감염자는 물론이고 건강한 여자까지도 마구 검거해 죽음의 몽키하우스로 끌어다 처넣는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미군 병사들이 아메리카 매독균을 지니고 와 한국 여자들에게 퍼뜨리는 건 아예 문제 삼지 않고 가엾은 양공주들만 족쳤다.


한편, 국내 현실에 대해서는 북괴군의 침략 위기를 내세우면서 살인적인 인권 탄압을 자행하던 한국 정부는 미국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혈맹’을 앵무새처럼 주절거리며 미군이 나라를 지켜 주리라는 일종의 망상에 빠진 채, 위안부들이 지옥에서 신음하는 소리엔 무관심했다. 그녀들은 국민이 아니라 소모품에 불과했다.


<다음호에는 마지막 회 ‘풀이슬 묘비명’이 이어집니다>

 

글/김영권(소설가)의 다른기사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Share on Google+ band URL복사
URL 복사
x

PC버전 맨위로 갱신

Copyright ⓒ (주)펜 그리고 자유.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