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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이 통일한국 철도를 통해 대륙으로 달려가는 꿈

남북철도 공동 운영공사를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철 (사)희망래일 이사장 l 기사입력 2018-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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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 코레일 전 사장. 현 (사)희망래일 이사장.

 

저는 2000년대 중반 몇 년 동안 철도공사 사장을 역임한 적이 있습니다. 철도 전문가가 되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애정을 갖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후 계속해서 철도에 대한 애정을 가져왔고 지금도 철도 밖에서 철도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런 저의 입장을 일종의 경계인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가끔은 외부와 내부에 걸쳐있는 경계인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계인의 입장에서 보면 평소 안 보이던 문제가 보일 때도 있습니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다른 문제의식이 생깁니다. 이런 문제의식이 때로는 신선한 자극제가 되어 새로운 동력이 될 때도 있습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한국철도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한국철도에 경험이 있고 또 애정이 많은 사람이 여러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라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부족한 제 이야기가 한국철도의 미래를 위한 의미 있는 자극제가 된다면 좋겠습니다.

 

최근 남북한 정상들의 만남이 계속되고 한반도에서 종전선언 가능성이 높아 가면서 남북한 철도 연결에 대한 희망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세대를 위하여 그리고 다음 세대를 위해서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분단 이후 처음으로 주어진 황금 같은 기회라 할 것입니다. 남북한 철도 연결은 우리 철도인들에게는 물론 한반도 모든 국민들에게 하늘이 내린 절호의 기회입니다. 우리가 이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다시 암울한 분단의 시대로 돌아간다면 역사는 우리 세대의 무능력과 무기력을 질책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우리 다음 세대를 위하여 그리고 한반도의 영구평화와 번영을 위하여 이 기회를 현실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 역사적 시기에, 이 귀중한 모임에서, 저는 “한국철도,알을 깨고 나오라”라는 제목으로 여러분들에게 세 가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은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이고 원칙적인 이야기이니까요. 제가 하고 싶은 첫 번째 이야기는 한국 철도의 비극적 시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1. 한국 철도는 제국주의 침탈에서 시작됐지만 완성은 우리의 의무입니다. 불행히도 한국 철도의 시작은 제국주의의 식민지 정책에서 출발했습니다. 개항 이후 우리는 우리의 철도를 건설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한국철도의 시작인 경인선은 주한미국전권공사인 기업가 제임스 모스(James R. Morse)의 '철도창설조약’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처음부터 한국철도는 외국의 자본에 의해 시작된 것입니다. 제임스 모스에 의해 시작된 경인선 부설권은 이후 일본 제국주의 손에 넘어갔고 일본은 경인선에서 출발해 경부선, 경의선 등을 부설하면서 조선반도의 철도 동맥은 식민지 침탈과 병행되어 건설됐습니다. 일제는 한반도의 철도를 이용해서 조선 식민지화를 빠르게 진행시켰고 만주를 거쳐 중국으로 이어지는 제국주의 수탈의 도구로 활용했습니다. 일제 치하의 그 처참한 현실을 제가 다시 거론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1899년 경인선 개통 이후 해방된 1945년까지 56년간 우리는 우리의 철도를 갖지 못했고 결국 식민지 조선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해방 이후 미소에 의해 강제 분단된 조국은 한반도의 철도를 두 동강 냈습니다. 모처럼 우리 손으로 돌아온 철도였지만 제구실을 하지 못했습니다. 철도는 휴전선에 가로막혀 불구가 된 채로 좁은 남한 땅에서만 겨우 그 기능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철도를 포함한 모든 물리적 네트워크는 무한대로 확장되어야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7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한국 철도는 남한이라는 좁은 공간에서만 겨우 호흡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본 것만큼 알게 됩니다. 경험한 것만큼 배우게 됩니다. 우리의 상상력은 보고 경험한 것들 바탕 위에서 생겨납니다. 성장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지 못하면 성인이 되어서도 제대로 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상상을 하더라도 온전한 상상을 하지 못하고 왜곡된 생각에 머물게 됩니다. 철도가 끊겨 남북이 서로 고립되면서 우리는 불구된 육신으로 지난 70년을 살아왔습니다. 남과 북이 서로 소통이 두절되면서 우리는 서로를 악마나 적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같은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제거해야 할 원수로 알고 살아왔습니다. 비극적으로 시작된 철도의 시작이 가져온 불행한 결과들입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 남아있는 친일 잔재와 극단적 반공주의는 국토와 철도의 단절에서 비롯한 지난날의 유산들입니다.

 

그러나 시작이 불행했다고 해서 결과까지 불행하도록 방치되어서는 안 됩니다. 완성된 철도를 운영할 의무와 권리가 이제 최초로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성경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네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창대하리라. 저는 이 말을 바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한국 철도의 시작은 외세에 의해 시작됐지만 그 완성은 우리가 하리라.

 

 

2. 통일 한국은 철도에서 시작되고 철도에서 마무리되어야 합니다.

 

전쟁에서 최후의 승리하는 쪽은 지상군이 적의 수도에 국기를 꽂는 순간 이루어집니다. 최첨단 전투기로 상대 나라를 폐허를 만들어도 최종적으로 깃발을 꼽지 못하면 승리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하늘은 열려 있지만 육지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바다는 육지를 만나는 지점에서 자신의 역할이 종료됩니다. 육지는 육지와 연결되어야 합니다. 오랜 기간 단절된 두 육지가 하나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도시와 도시, 마을과 마을로 이어지는 철도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통일 한국을 원한다면 그 시작은 당연히, 그리고 조건 없이 철도운영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통일 한국의 시작은 사람들이 원하는 시각에 원하는 장소를 갈 수 있는 철도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동안 남북한 공동성명서도 여러 차례 있었고 희망적인 순간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면 결국 종잇조각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철도가 연결되지 못하면 결국 모든 것이 허사로 돌아갑니다.

 

최근 CVID (Complete, Verifiable and Irreversible Dismantlement) 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주장하는 미국 측의 주장이 담긴 표현입니다. 이에 대해 북한은 CVIG (Complete, Verifiable and Irreversible Guarantee) 를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취소 불가한 체제보장을 해달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 두 표현을 이렇게 바꾸고 싶습니다.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취소 불가능 철도운영 즉 CVIR (Complete, Verifiable and Irreversible railway)입니다.

 

우리의 희망은 CVID와 CVIG가 동시에 진행되어 좋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비핵화와 체제보장은 정치적 상황에 따라 유동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입니다. 이 절박한 순간에 우리는 철도를 통해 불가역적 미래를 만들어야 합니다. CVIR이 그 유일한 대안입니다. 여기서 레일 웨이, 철도는 물리적 네트워크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철도의 주체적 운영과 운영을 위한 소프트웨어 그리고 철도 운영에 필요한 콘텐츠를 포함한 통합적인 네트워크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다시 과거로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돌아가게 해서도 안 됩니다. 철도가 운영되고 사람들이 철도를 통해 교류하게 되면 다시는 과거로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독일 속담에 도시의 공기는 사람들을 자유롭게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독일이 중세에서 근대로 이행되는 과정에서 나온 말입니다. 당시 도시에서는 자유와 시장이 있었고 사람들은 본인의 의사에 따라 상거래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도시를 제외한 농촌에서는 모든 것들이 봉건 영주에게 예속된 상태였습니다. 사람들은 도시로 오고 싶어 했고 도시에 오게 되면 다시 농촌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한번 자유를 맛보면 다시 예전 상태로 돌아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한 번 교류가 발생하게 되면 사람들은 이전에 사고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됩니다. 새로운 생각들을 하게 되면 이전에 자신들이 살았던 것을 잊고 새로운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몰랐던 사람들을 다시 보게 되고 소통하고 거래하면서 타인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됩니다. 다시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CVIR이야말로 진정한 평화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남북철도 공동 운영공사를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이제 구체적으로 제 생각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기회는 외부에서 주어질 수 있지만 그 결실은 자신의 준비와 노력 없이는 결코 완성될 수 없습니다.

 

저는 남북한 철도인들이 남북철도의 공동운영공사를 만들기 위해 준비작업에 나설 것을 제안합니다. 조속히 남북 철도인들이 접촉하고 여러 가지 일들을 함께 해나가야 합니다. 우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여러 면에서 표준화와 공동 교육이 필요합니다. 기반시설과 차량, 자재와 부품, 전원이나 연료 등을 단계적으로 하나의 표준으로 통일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용어를 통일하고, 신호체계를 통일하고, 여러 가지 작업을 표준화하기 위하여 공동 교육이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어야 합니다. 이 세밀한 일들을 정부에 의존하고 기다려서는 안 됩니다. 정부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기다려서도 안 됩니다. 미리 준비하고 정부와 협의하면서 실천해야 합니다. 그 주체는 남북한 철도인 들이며 그 시작은 여기에 계신 여러분들이 되어야 합니다.

 

산업화와 근대화의 중심축이었던 우리 철도는 거의 모든 기간을 정부의 한 부서로서 성장해 왔습니다. 예산을 타서 운영하고 지시에 따라 집행하는 오래된 체질을 가졌기 때문에 안전과 안정을 중시하는 철도가 크게 탈선하지 않고 이 땅의 동맥으로 존재하고 발전해 왔습니다.그러나 이제는 백 년 동안 굳어진 그 껍질을 깨고 나와 남북 운영자 회의를 제안하고 표준화 작업과 공동 교육, 그리고 남북 공동운영공사를 준비하셔야 합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힘들더라도 제도와 정책의 큰 틀 안에서 능동적으로 통일 철도를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남북철도는 물리적 연결이 목표가 아닙니다. 실제 운영이 되어야 하고 운영의 주체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오랜 기간 동안 쌓인 무기력과 타성에서 벗어나 여러분 스스로가 나서야 합니다. 어렵더라도 철도의 모든 구성원들이 힘을 합쳐 철도의 실질적 운영주체를 준비해야 합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알 안에 있으면 모든 것이 평안하겠지만 결코 주체가 될 수 없습니다.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오면 새 생명이 탄생하지만 남이 알을 깬다면 에그후라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오랫동안 의존해온 두꺼운 알을 깨고 이제는 이 땅의 철도인들이 통일 철도의 주체로 나서기를 강력하게 요청합니다.

이제 제가 여러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끝나갑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덧붙이고자 합니다. 1963년 미국 흑인 운동가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가 워싱턴 DC링컨 추모관 앞에서 한 연설을 여러분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링컨의 노예 해방 선언 이후 10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흑인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는 현실 속에서 킹 목사가 분노하면서도 새로운 희망을 이야기한 연설이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조지아 주의 붉은 언덕에서 노예의 후손과 노예 주인의 후손이 형제애라는 식탁 앞에 나란히 앉을 수 있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부당함과 억압의 뜨거운 열기로 신음하는 미시시피 주도 언젠가 자유와 정의가 샘솟는 오아시스가 되리라는 꿈입니다”

 

킹 목사의 이 연설은 절망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노예 해방 선언문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차별이 있었고 억압이 있었습니다. 킹 목사가 주목한 것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모든 문제는 당사자가 직접 나서야 합니다. 나서서 행동할 때 꿈이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상황도 같습니다. 어떤 협약이 맺어진다 하더라도 우리가 실천하고 행동해야 결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부산, 목포 저 남도 땅 끝에서 출발한 기차가 서울을 지나 개성, 평양, 신의주, 원주, 함흥을 거처 만주를 지나고 시베리아를 통과해서 광활한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는 꿈입니다. 나라를 잃은 백성들이 땅을 잃고 고향에서 쫓겨나 만주로 갈 때 눈물 흘리며 탔던 경부선 그 열차가 아니라 이제는 우리의 젊은 세대들이 유라시아 대륙에서 원대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희망을 안고 타는 철도를 그리는 그런 꿈입니다. 분단 이후 남한, 북조선이라는 육지섬에 고립된 한민족이 통일한국의 철도를 통해 반도를 벗어나 세계와 교류하면서 대륙으로 달려가는 그런 꿈이 제게 있습니다.

 

이 꿈은 몽상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기 시작했고 갈 수 있고, 가야만 하는 길입니다. 내 꿈은 곧 우리 모두의 꿈이고 한반도에 사는, 아니 세계 여러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한민족의 모두의 절대적 희망입니다. 저도 그 길에 동참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그 영광스러운 길에 함께 갑시다.

 

<이 글은 지난 10월 18일 열린 한국철도학회 2018년 정기총회 및 추계학술대회에서의 연설문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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