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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아 사건, 진실규명 촉구 기획 시리즈-3]
10여년 투쟁해온 정경아 모친 김순이씨 단독 인터뷰

진실 덮기에 급급한 수사당국…“초동수사만 잘했더라면”

성혜미 기자 l 기사입력 2015-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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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보아도 구타당한 흔적이 뚜렷한 시체가 있다. 하지만 사건을 담당한 경찰은 이 사람은 투신자살한 것이라며 사건을 종결지어버렸다. 만약 이 시체가 자신의 가족이나 자식이라면 어떻게 받아들일까. 여기 그저 딸의 정확한 죽음의 원인을 알고 싶다며 10여 년간 가녀린 몸으로 수사당국과 싸워온 한 여성이 있다. 지난 2006년 경기도 파주에서 뛰어내려 숨진 정경아양의 어머니 김순이씨다. 현재까지도 김씨는 경기도와 서울을 오가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이에 본지는 딸이 원인불명으로 세상을 떠난 뒤 홀로 남아 진실을 요구하는 유가족의 목소리를 들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10년간 싸워 얻은 것…“빚·불신·질병 뿐”

해소 못한 의혹제기에도 사법기관 ‘시큰둥’

“살인 시효기간 2016년까지 포함하라” 주장

진실을 말할 때 까지…“무기한으로 싸울 것”

 

[주간현대=성혜미 기자]

 

-정경아가 세상을 떠난 지 벌써 10년이 다 되간다. 그 동안 홀로 수사당국과 싸우느라 경제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힘들었을 것 같다.

▲ 10여 년간 싸우면서 얻은 것은 오로지 빚뿐이다. 경찰로 부터 알아낸 진실은 사건초기랑 다를 것 하나도 없다. 지금 수익은 선인장 농장으로 부터 조금씩 얻고 있다. 현재 파주경찰 앞에서 경찰청에서 총리 본청 앞에서 시위하느라 바빠 몸이 성한 곳이 없다.

 

▲ 정경아씨의 모친 김순이씨는 검찰이 초동수사만 제대로 해줬더라면 이렇게 긴 싸움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김상문 기자>     ©주간현대

-정경아 위로 오빠가 2명이 더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여태까지 나온 기사들을 봤을 때 오빠들에 대한 글은 별로 없더라. 그들은 엄마가 이렇게 혼자 싸우는 것에 대해 말리거나 그렇지는 않은가

▲ 우리 아들들은 평범한 직장인이여서 자기들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다. 엄마 돌볼 여유 없을 것이다. 경아가 2남2녀 중 막내라서 걔들도 자기 동생 생각만하면 답답해한다.

 

-2남2녀인 줄은 몰랐다. 형제자매 관계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다.

▲ 사실 경아 위로 언니가 있었는데 어렸을 적에 헤어졌다. 시어머니에게 잠시 맡기고 서울에 내려가 있는 동안, 시어머니가 잃어버렸는지 일부러 줬는지 모르겠지만 데리러 갔더니 없더라. 갓 돌 지난 갓난아기였을 때 헤어져서 찾을 수 없었다. 이후 가슴에 울화가 응어리져서 살다 낳은 것이 우리 경아다. 막둥이라 애지중지 키웠는데 이 모양 이 꼴이 됐다.

 

 

-막둥이들은 부모 사랑을 많이 받아서 그런지 마이웨이인 경향이 있던데 살아생전 정경아도 철부지 막내 같은 느낌이었는가.

▲ 철부지는 아니지만 딱 요즘 애들 같다. 나 같은 경우 18살 때 홀몸으로 서울에 상경해 온갖 눈치를 보며 살았다. 그래서 그런지 자기주장 확실하고, 자기실속을 챙길 줄 안다. 반면에 경아는 돈 관계에서도 우유부단하고 남에게 나쁜 말 못하고 지독하지 못했다. 그리고 경아가 무용을 잘 했다. 국립 전통 국악고등학교 출신으로 무용을 전공했다. 선생님들도 경아가 팔, 다리가 길고 얼굴도 예뻐서 무용하기 좋은 몸이라고 칭찬을 자주하셨다.

 

-무용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일반 인문계 출신 아이들과 다르게 예체능 계열로 대학입시를 했는가.

▲ 그렇지 않다. 고등학교 졸업 후 경아는 곧바로 취업을 했다. 이 때 인연을 맺은 것이 배씨, 조씨다. 그러다 내가 요즘 대학 졸업장 없는 사람이 어디 있냐며 다시 전공 살려 대학에 가라고 했지만 무용을 하지 않겠다고 하더라.

 

-20대 초반의 청년들이 막연한 미래를 걱정해 많이들 방황한다고 들었다. 경아도 자신이 여태까지 해왔던 무용을 두고 많은 고민을 한 것으로 보인다. 

▲ 방황을 한 것 같다. 솔직히 이 당시 나는 장남에게 신경을 쓰느라 경아를 등한시한 경우가 없잖아 있다. 이때 경아가 질이 좋지 않은 친구들과 어울리기에 지방에 있는 전문대를 진학시켰다. 관광영어학과를 보냈는데 모든 수업을 영어로 한다며 힘들다고 한 적이 있다. 그러다 경아 학교에서 연락이 와 경아가 학교에 출석하지 않은 지 오래 됐다고 말했다. 경아한테 물어보니 친구들과 오피스텔을 얻어서 같이 살고 있다고 말하더라. 나는 괜찮은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그 당시 아이들 아빠는 술만 먹으면 아이들을 괴롭게 만들곤 했었기 때문이다.

 

-사건 당일 정경아와 통화했다던 전 남자친구 이씨와 정경아는 1여년간 동거한 사이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오피스텔에서 함께사는 친구는 이씨인 것인가.

▲ 그것은 잘 모르겠다. 아무튼 경아가 동거하고 있다는 것은 경아 친오빠들로부터 통해 알게 됐다. 그러다 나중에 경아랑 제일 친했던 친구 얘기를 들어보니 전 남자친구로 인해서 경아가 마음고생을 많이 했더라.

이씨라는 남자애 부모는 둘 다 다른 집안 살림을 하고 살았다. 그래서 그런지 남자애가 마음잡지 못하고 동네에 있는 젊은 여자애들은 죄다 건들고 다녔다고 하더라. 또 일도 안해서 돈도 없었고 공부도 게을리 했다. 그래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씨네 엄마가 자기네 아들 마음 잡으라고 순진해 보이는 경아를 꼬셔서 동거하도록 시킨 것 같다. 지 자식만 귀한 줄 아는 거다.  이씨네 엄마는 우리 경아 앞으로 보험도 하나 들었다. 왜 들었는지 이유를 묻고 싶었으나 이 것을 물고 늘어지면 수사 방향이 틀리다며 지금 하고 있는 것도 팽개칠까봐 궁금해도 가만히 있는 상태다.

 

-진술서를 보니 정경아양이 금전적으로 힘들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거를 하다 집으로 돌아오게 된 계기도 이와 연관이 있는가.

▲ 결정적인 이유는 경아 생일에 그 남자친구가 모텔에 갔던 것이 발각돼 싸운 것 같다. 이씨가 여자문제도 복잡하고, 경제적으로도 문제가 많아 자기까지 신용불량자가 되버리니깐 생각이 바뀐 것 같다. 경아가 들어오고 나서도 매달 이씨로 부터 “보험료를 왜 내지 않냐”며 전화오곤 했다.

 

-사건 당시 사회 선배 배씨의 휴대폰으로 이씨와 정경아가 많은 통화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정경아가 이씨를 못 잊고 전화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던데 같은 생각인가.

▲ 경찰과 다르게 생각한다. 물론 경아가 배씨 핸드폰을 빌려서 건 것은 전 남자친구가 맞다. 내가 보기에는 이미 앞전에 횟집에서 술을 마셨기 때문에 경아는 당시 취한 상태였고, 술기운에 전 남자친구에게 해소하지 못했던 울화를 푼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경아는 맥주 1~2잔이면 취한다. 그러나 경찰의 주장처럼 경아가 남자친구에게 미련이 있거나 그래서 전화한 것은 아니라고 확신한다. 평소에 경아는 거리낌 없이 나나 올케언니에게 거리낌 없이 자기 얘기를 꺼내곤 했는데 항상 이씨 험담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경아와 이씨는 그 날 직접적인 통화는 한 번했다. 나머지는 국씨, 배씨가 한 것이다. 전화통화를 많이 했다는 것은 경찰이 자기 마음대로 해석한 것 일뿐 사실이 아니다. 당시 핸드폰을 누가 들고 다녔는지 확실히 알 수 없음에도 경찰들이 출력한 사건당일(20, 21일) 통화 내역서에는 ‘발신 정경아’라고 적혀 있었다. 한마디로 조작한 것이다.

 

-사건 당일 어머니는 뭐 하고 계시다 따님의 사망소식을 듣게 되신 건가.

▲ 그 날은 계모임하는 날이어서 사람들과 모여 밥을 먹고 있었다. 그러다 큰 아들이 전화로 경아가 죽었다고 전했다. 처음에는 마치 다른 사람 이야기처럼 들리고 살아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어두컴컴한 시체 보관실에 경아가 흰 천을 두르고 누워 있더라. 천을 열어 얼굴을 가만히 보다보니 자살한 애의 모습이 아니었다. 입안은 모두 다 터져있고, 눈은 멍이 시퍼렇게 들어있었다.

 

-곧바로 장례식으로 옮긴 것이 조금 낯설다. 사건이 발생한 지 24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마치 서두르는 것처럼 보인다.

▲ 나도 똑같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같은 날 갑자기 시체보관실에서 경아를 꺼내더니 119차에 실어 어딘가로 이동했다. 나는 “수사를 하러 가는가 보다”라고 생각하고 따라나섰다. 하지만 도착한 곳은 인근 다른 장례식장이었다. 장례식장에는 이미 작은 꽃다발도 준비되어 있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우리 작은아들이 가장 먼저 경아소식을 듣고 파주경찰서에 갔더니 경찰이 얼른 진술을 완료하라고 닦달 했다고 한다. 사회물정 모르는 작은 아들은 경찰이 하라고 하니 시체확인을 했는지, 수사를 마쳤는지 이런 것들은 일절 묻지 않고 따른 것이다. 이 말을 듣고 수사를 경찰이 하지 않겠다면 나라도 증거를 남겨야겠다 싶어서 시체보관실에 가서 경아 사진 곳곳을 찍었다. 사진을 찍기 위해 흰 천을 열어 몸을 봤는데 피가 흥건했다. 얼굴이 깨끗해 아무런 이상이 없는 줄 알았더니 몸 상처는 너무 심했다. 특히 팔은 거의 잘려서 달랑 달랑이라는 표현이 알맞은 상태더라. 괴로웠지만 일일이 개인카메라에 담았다.

 

-국과수, 검찰, 경찰까지 모두 불신하는 것 같은데 언제부터 그들에 대한 신뢰감이 사라진 것인가. 처음부터 국가기관을 의심하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 당연히 처음에는 그들을 전적으로 믿었다. 하지만 초기 수사에서 부터 내 믿음은 완전히 깨져버렸다. 경찰들이 은폐한 것들을 얘기하자면 끝이 없다. 우선 사건 첫날 아파트 주민들은 옥상에서 사람이 떨어졌다고 주장했지만 경찰 혼자 10층 창문에서 죽었다고 판정했다. 그래서 내가 10층 창문에는 스테인레스 봉이 여러 군데 많던데 창문을 통해 자살했다면 주변에 반드시 지문이 있을 테니 증거를 달라고 요청했다. 그랬더니 경찰은 사건이 발생하고 5일 후 지문이 발견됐다고 나에게 말하며 자살을 확신했다. 그러나 정보공개청구로 받은 당시 수사보고서에는 지문이 검출되지 않음이라고 작성돼있었다. 다시 말해 지문은 검출되지 않았지만 입으로만 검출됐다고 한 것이다. 이어 경찰은 타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진술은 철저히 배제시켰다. 전 남자친구 이씨는 우리(유가족)에게 배재경이랑 통화할 당시 핸드폰 너머에서 경아가 ‘억’소리를 내고 핸드폰 폴더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으며 “경아야”라는 다급한 소리가 들렸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경찰은 해당 진술을 빼고 진술서를 작성한 것이다. 내가 왜 이것을 빼느냐 넣으라고 항의하니까 얼버무리더라. 그리고 뒤에서 이씨한테 왜 말했냐며 업무방해죄로 구속 시키겠다 엄포를 놓은 것이다. 무서워가지고 이씨라는 남자애는 쪼르르 나한테 전화 와서 “왜 말하셨어요 어머니”라며 취소해달라고 하더라. 또 사건 첫날 참고인 신분으로 용의자 국씨, 조씨, 배씨 중에 배씨만 불러서 조사 하길래 “왜 쟤만 부르냐, 다른 사람은 안 부르냐”따지니까 경찰 팀장이라는 놈이 “그 두사람은 취직한지 2개월밖에 안돼서 경찰이 지금 부르면 회사평판이 나빠질 것”이라고 얘기해 너무 어이가 없었다.

 

-부검에 참여하실 생각은 어떻게 하신건가. 일반적으로 유가족이 부검하는 과정에 참여하기를 꺼려하지 않나.

▲ 이대로 끝내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머니인 내가 다시 부검신청을 했고 참여한 것이다. 부검의는 충격 먹을 수 있으니 두 아들보고 대신 들어갈 것을 권유하기도 했지만 나는 내가 직접 보고 싶었다. 부검을 시작하고 몇 번 문 밖으로 나갔다, 들어오기를 반복했다. 중간에 밖으로 나가 통곡하다가도 놓치면 안된다고 생각해 다시 들어오곤 했다. 두개골을 가르고 내장을 빼내고 국자로 피를 한 바가지 푸는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지켜봤다.

 

-시체에서 피를 국자로 몇 바가지 펐다는 것이 상상이 안간다. 법의학박사들은 뭐라고 하던가.

▲ 현장에 있던 국과수 직원들을 믿기 어려워서 나중에 아는 사람을 통해 국과수에서 20여 년간 근무한 분을 만나 경아에 대한 모든 사진을 보여드리고 자문을 구했다. 그 분은 경아가 급작스럽게 죽었다고 했다. 상처의 경우 외부에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도 생길 수 있는데 갑자기 숨이 멎는 경우에는 피가 고인다고 했다. 또 경아 목 부근에 있는 찍힌 손자국은 왼손이며 목 가운데 부근 3개의 손톱자국은 우리 딸 것이라 말했다. 그 분은 경아의 손톱자국이 저항하면서 생긴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지금 말 하는 그 분은 어떻게 만난 사람인가. 사진에 대해 순수하게 답변해줬다고 느끼는가.

▲ 어떤 사람이 말해주기를 그 분은 유일하게 대한민국에 남아있는 양심이라고 했다. 연락처를 받아 연락을 했더니 처음에는 1주일 뒤에 만나자고 했지만 계속 기한을 뒤로 미뤘다. 아무래도 나를 만나기 꺼려하는 듯 보였다. 그러더니 그 분이 대뜸 핸드폰이 아닌 일반 전화기로 통화할 수 있겠냐고 해서 알겠다고 했다. 그렇게 일반 전화기로 들었던 내용이 위에 말한 내용이다. 그 분은 통화를 마치면서 이번 부검 결과지는 20여년간 국과수에서 근무했던 자기가 봐도 아리송하게 되어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부검결과지에서 어머니가 가지고 있는 결과지에는 외압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개제되어 있었지만, 경찰이 가지고 있는 자료에는 그런 게 없었다. 어떻게 된 건가.

▲ 검찰이 쇼를 한 것이다. 내가 처음 부검 결과지를 국과수로 부터 지난 2006년 8월부터 11월까지 총 5번 자료공개청구로 받은 것인데 모두 똑같다. 모두 ‘원본 대조필’이 찍혀있었고 과장, 계장 도장도 찍혀있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2011년 되서야 검찰은 나에게 부검 결과지를 보내준 법의학박사를 소환해 왜 오류가 난 서류를 유가족에게 보내서 사건을 어지럽게 만들었냐고 추궁한 것이다.

▲ 서울과 경기를 오가며 진실을 밝히기 위해 홀로 시위하는 김순이씨. <출처=도서 ‘딸의 타살을 경찰은 자살로서’중 일부>     © 주간현대


-10여년 가까이 수사당국과 싸우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났을 것 같은데 그 중 특별히 도움이 됐던 사람이 있는지.

▲ 도와준 사람아무도 없었다. 처음에는 여러 사람들이 도와주겠다며 나섰지만 나중에 가면 모두 나를 이용하더라. 그래서 혼자서 싸워왔다.

 

-마지막으로 정부나 언론, 사법기관에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 내가 원하는 것은 형식적으로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재조사를 원한다. 지금 내가 가장 답답한 것은 의문점들이 빤히 보이고 수두룩 한대도 수사를 제대로 안 해주고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이다. 처음부터 경찰이 대충 수사한 것이 아니라 의혹들을 하나, 하나 조사해줬더라면 이렇게 까지 긴 싸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들의 잘못을 사죄하고 고칠 생각은커녕 덮으려고만 하니 사법 기관을 불신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부에게 꼭 말하고 싶은 것은 살인시효 폐지를 왜 2007년부터가 아닌 2006년까지 기간을 더 늘려줬으면 한다. 나는 진실을 밝힐 때까지 수사당국과 무기한으로 싸울의향이 있다.

 

ahna10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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