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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랜75’ 각본·연출 하야카와 치에 인터뷰

“노인이란 존재 지우는 사회…강렬한 위기감 느낀다”

인터넷뉴스팀 l 기사입력 2024-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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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7일 개봉된 영화 <플랜75>는 도발적인 소재로 관객에게 충격을 안겨준다. 영화 속 ‘플랜75’는 일본 정부의 정책 중 하나로, 75세가 넘은 고령자에게 안락사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 정책의 대의(大義)는 이렇다.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국가 미래에 기여한다.’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노인을 지원하는 데 드는 국가재정 규모 역시 부담스러울 정도로 빠르게 늘어가고 있기 때문에 다음 세대를 위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마지막으로 나라에 기여할 기회를 준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극적인 상황 설정이다. 그러나 출생률이 0.78명(2022년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낮고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나라에서 사는 한국 관객에게 이 영화는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75세 넘은 고령자의 안락사 권하는 스토리···초고령 사회 한국에 의미심장

“생산성으로 사람의 가치 판단하는 사회 분위기 만연···우리 모두 늙어간다”

 

▲ 영화 ‘플랜75’에서 도발적인 소재로 관객에게 충격을 안겨준 하야카와 치에 감독.  

 

영화 <플랜75>를 보고 고민에 빠지게 되는 건 일본 혹은 한국 관객만은 아니다. 이 작품은 재작년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돼 황금카메라상으로 ‘특별히 언급’됐다. 노인 문제, 나아가 사회적 약자에 관한 논의는 더 이상 특정 나라에 국한한 얘기가 아니라는 게 전 세계 사람이 공유하는 생각이라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플랜75> 연출과 각본을 맡은 하야카와 치에(48) 감독을 만났다. 하야카와 감독은 “생산성으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분위기가 사회에 만연해 있다고 봤다”며 “강렬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플랜75>는 크게 보면 78세 여성 미치(바이쇼 치에코 분)에 관한 얘기. 독거 노인 미치는 호텔에서 청소 일을 하고,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어울리며, 평범한 일상을 보내다가 갑작스럽게 삶에 큰 위기를 맞는다. 일자리를 잃고 사회 주변부로 더 멀리 밀려나게 된 것. 

 

TV·라디오 등에서 ‘플랜75’ 정책이 대대적으로 홍보되는 상황에서 그는 보이지 않는 압박에 시달리다가 바로 그 제도를 두고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이와 함께 이 작품은 미치를 중심으로 ‘플랜75’에 얽힌 인간 군상을 보여주며 우리 사회의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예상한다.

 

하야카와 감독은 이 영화가 2016년 발생한 ‘사가미하라(相模原) 사건’에서 출발했다고 밝혔다. 20대 남성이 가와가나현 사가미하라에 있는 장애인 시설에 들어가 장애인 19명을 죽이고 27명을 다치게 한 사건으로 전후 일본에서 벌어진 최악의 흉기 살인으로 여겨진다. 범인은 당시 ‘장애인은 쓸모가 없다’는 식으로 얘기해 일본 사회에 충격을 안겼는데, 영화 <플랜75>의 ‘플랜75’ 제도는 마치 그 발언을 제도화한 것만 같다.

 

“물론 그 사건의 범행 대상은 장애인었습니다. 중요한 건 그들이 사회적 약자라는 것이죠. 그때 그의 발언은 빈곤층에도 적용될 수 있고, 노인에게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우리는 모두 늙게 돼 있고, 노인이 된다는 점입니다. 노인에 관한 얘기를 하며 이 이야기를 나와 무관한 타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로 여길 것이라고 봤습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린 모두 늙습니다.”

 

<플랜75>는 일본에선 2년 전 공개됐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이미 관객을 만났다. 한국에서는 다소 늦게 개봉했다. 하야카와 감독은 “한국은 일본과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어서 한국 관객이 이 영화를 어떻게 볼지 궁금하다”며 “다만 미국과 유럽에서 보인 반응도 일본에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회적 약자를 배제하려는 경향이 전 세계에 만연해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이 작품에는 노인의 일상이 세세하고 현실적으로 담겨 있다. <플랜75>가 그려낸 미치의 생활을 보면 아직 늙지 않은 사람들의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으면서도 그 속엔 짙은 외로움 같은 게 담겨 있다. 동시에 우리 사회가 알게 모르게 노인의 존재를 지워버리고 있으며 그들의 일상을 압박하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꼭 ‘플랜75’ 같은 제도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하야카와 감독은 이 영화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미치와 같은 노인 여성 15명 정도를 만나 인터뷰를 하며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이 시나리오에 영향을 준 중요한 사람 중 한 명은 하야카와 감독의 어머니다. 

 

“나의 어머니는 81세이고, 혼자 살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생활에 관해 잘 알고 있어서 많은 디테일을 어머니에게서 가져왔죠. 우편물이 올 일이 없는데도 매일 우편함을 확인하는 것 같은 거요. 또 어머니가 이렇게 생활할 것 같다고 상상한 부분도 당연히 있었습니다.”

 

노인이 나오고 죽음을 소재로 하다 보니 격한 감정이 쏟아질 것만 같지만, <플랜75>는 대체로 건조하다. 배경이 겨울인 데다가 푸른 빛을 강조한 화면 연출 탓에 건조하다 못해 시린 느낌마저 준다. 감정을 드러내는 캐릭터가 없는 건 아니지만 소수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절제돼 있다. 말로 설명하기보다는 분위기로 표현한다. 이 작품의 이런 정조(情調)에는 하야카와 감독의 현실 진단이 묻어난다. 

 

그는 “자칫 하면 감상적인 멜로 드라마가 될 수 있는 작품이었기 때문에 작품의 주제를 흐리지 않기 위해 감상적인 부분은 최대한 배제하고 대체로 냉철한 톤으로 그려내려 했다”고 말했다.

 

하야카와 감독은 <플랜75>가 “나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인 줄 알았던 이들을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일본에서 이 영화를 본 젊은 관객들 중 평소 대화를 거의 하지 않던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자기도 모르게 말을 걸었다고 얘기한 분들이 꽤 있었습니다. 한국도 일본과 상황이 매우 비슷하지 않나요? 한국 관객 역시 나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처지에 공감하고 그들의 삶을 상상하게 됐으면 합니다. 이 영화가 그런 역할을 해줄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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